고라니와 사슴이 무리를 이루면 호랑이나 표범도 피해가고, 나는 새가 대열을 이루면 매나 독수리도 덮치지 못하며, 많은 사람이 무리를 이루면 성인도 그들을 범하지 못한다.
등사(螣蛇)는 안개와 이슬 속에 유영하여 풍우를 타고 다니되, 1천 리가 아니면 그치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저녁이 되면 미꾸라지나 드렁허리의 굴에 숨어서 자니 어찌하여 그런 것인가? 이는 바로 그 마음 씀이 한결같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릇 지렁이는 몸 안에 근육과 뼈의 강함이 없고 몸 밖에는 손톱이나 이빨의 예리함도 없다. 그런데 땅을 파서 황천을 마시고 위로는 굳은 흙조차 부드럽게 갈아낸다. 이는 어찌하여 그런 것인가? 그 마음 씀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귀 밝은 자는 귀로 듣고, 눈 밝은 자는 눈으로 본다. 밝게 듣고 밝게 보아 드러내면 인애(仁愛)가 분명해지고, 염치(廉恥)가 분별된다.
그러므로 그 길이 아닌데도 가려고 들면 비록 수고를 하여도 이르지 못하며, 자기가 가질 것이 아닌데도 구하려 들면 억지로 해도 얻지 못하니, 지혜로운 자는 자기가 할 일이 아니면 하지 않으며, 염직한 자는 자기가 가질 것이 아니면 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해로움이 멀어지고 그 이름이 밝게 드러나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남을 미워해 해치지 않으며 탐욕스럽게 구하지 않으면, 어찌 착하지 않으리오.[不忮不求, 何用不臧.]”라고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설원 : 잡언>
麋鹿成群, 虎豹避之 ; 飛鳥成列, 鷹鷲不擊 ; 眾人成聚, 聖人不犯. 騰蛇游於霧露, 乘於風雨而行, 非千里不止 ; 然則暮托宿於鰌鱣之穴, 所以然者, 何也? 用心不一也. 夫蚯蚓內無筋骨之強, 外無爪牙之利 ; 然下飲黃泉, 上墾晞土. 所以然者, 何也? 用心一也. 聰者耳聞, 明者目見, 聰明形則仁愛著, 廉恥分矣. 故非其道而行之, 雖勞不至 ; 非其有而求之, 雖強不得 ; 智者不爲非其事, 廉者不求非其有 ; 是以遠容(害)而名章也. 詩云 : 「不忮不求, 何用不臧.」 此之謂也. <說苑 : 雜言>
- 등사[螣蛇] 용처럼 생겼다는 전설상의 뱀이라고 한다. 이아(爾雅) 석어(釋魚)에 “등(螣)은 등사(螣蛇)이다.[螣, 螣蛇.]”라고 하였는데, 진(晉)나라 곽박(郭璞)의 주(注)에 “용과 비슷하다. 운무(雲霧)를 제 마음대로 일으켜 그 속에서 논다.[龍類也, 能興雲霧而游其中.]”라고 하였다. 훼등(虺螣)이라 부르기도 한다. <韓非子 難勢> <鹽鐵論 刺復>
- 등사[騰蛇] 28수의 하나인 실수(室宿)에 딸린 별자리 이름이다. 물속에 사는 벌레와 동물을 상징한다.
- 불기불구 하용부장[不忮不求 何用不臧] 시경(詩經) 패풍(邶風) 웅치(雄雉)에 “남을 해치지 않으며 남의 것을 탐하지 않는다면 어찌 착하지 않겠는가.[不忮不求 何用不臧]”라는 말이 나오는데, 논어(論語) 자한(子罕)에서 공자(孔子)가 자로(子路)의 욕심 없는 마음을 칭찬하며 이를 인용하여 “해어진 솜옷을 입고 여우 갖옷이나 담비 갖옷을 입은 사람과 나란히 서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중유(仲由)일 것이다. 남을 해치지도 않고 남의 것을 탐하지도 않는다면 어찌 착하지 않으리오?[衣敝縕袍 與衣狐貉者立 而不恥者 其由也與 不忮不求 何用不臧]”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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