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군[同群] 같은 무리. 함께 처하여 있는 동료. 무리 짓다. 어울리다.
동군[桐君] 동군(桐君)은 황제(黃帝) 때 사람인데 일찍이 약을 캐며 도(道)를 구하여 동려현(桐廬縣)의 동산에서 살았다. 초목(草木)과 금석(金石)의 성미(性味)를 잘 알아 삼품(三品)의 약물(藥物)을 정하여 약성(藥性) 4권과 채약록(採藥錄)을 저술하였다.
동군[桐君] 동군(桐君)은 거문고의 별칭이다.
동군[洞軍] 동네 안의 젊은 남자를 이른다.
동군[東郡] 동쪽의 고을을 가리킨다.
동군[東郡] 연주(兗州)는 한대(漢代)에 동군(東郡)이었다.
동군[東郡] 지명. 연주(兗州)에 속한 지명으로 두보의 부친이 사마(司馬)로 있던 곳이다.
동군[東軍] 동진(東進)하는 군대 또는 동방의 군대를 이른다.
동군[東君] 동군(東君)은 봄을 주관하는 신(神)이라는 뜻의 시적인 표현이다. 봄은 동방(東方)과 청색(靑色)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동제(東帝), 동황(東皇), 청황(靑皇), 청제(靑帝) 등으로 불렸다.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시에 “병들고 나니 어떤 일도 한가함보다는 못한데, 동군이 깃발 거두고 돌아감 또 보겠네.[病餘萬事不如閑 又見東君卷旆還]”라는 구절이 있다. <牧隱藁 卷21 柳巷樓上>
동군[東君] 동방의 군주란 뜻으로 동황(東皇)이라고도 칭하는바, 오행(五行)에서 봄은 동방(東方)에 해당되기 때문에 봄의 신(神)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동제(東帝)·동황(東皇)·청황(靑皇)·청제(靑帝)라고도 한다. 참고로 송나라 당경(唐庚)의 시 이월견매(二月見梅)에 “아직도 한 가지 매화가 있을 리 없으니, 동군이 억지로 손님을 머물게 한 것이리라.[不應尙有一枝梅, 可是東君苦留客]”라고 하였다. <古文眞寶 前集 卷4 二月見梅>
동군[東君] 해[日]를 가리킨다. 곽말약(郭沫若)의 굴원(屈原) 제2막에 “일곱 번째 사람을 동군이라 하는데 태양신으로 남자 모습을 하고 얼굴색은 붉으며 푸른 윗옷에 붉은 치마를 입는다.[第七人爲東君, 太陽神, 男像, 面色赤, 手執弓矢, 靑衣白裳.]”라고 하였다.
동군목제치사[同群牧制置使] 송나라 인종(仁宗) 경우(景祐) 4년(1037)에 군목사(群牧司)를 설치하여 국가의 마필(馬匹)을 기르고 번식하고 사용하고 교환하는 등의 마정(馬政)을 관장하게 하였다. 제치사(制置使) 1명을 두어 추밀사(樞密使), 추밀부사(樞密副使)가 겸임하게 하였다.
동군순리[東郡良吏] 동군(東郡)의 어진 관리. 한나라 때 지방 장관으로 나가 선정을 펼치기로 첫손가락에 꼽혔던 한연수(韓延壽)를 가리킨다. 그는 회양(淮陽) 영주(潁州) 동군(東郡) 등의 태수를 역임하는 동안 예의를 숭상하고 옛날 방식의 교화(敎化)를 펼쳐 천하제일의 치적으로 일컬어졌다. <漢書 卷76 韓延壽傳>
동군옥절[東君玉節] 동군(東君)은 봄을 맡은 동쪽의 신(神)을 말하고, 옥 부절[玉節]은 곧 봄 소식을 의미한다.
동군태수[東郡太守] 동군(東郡)은 중국 직례성(直隷省)에 있던 군. 태수(太守)는 관명. 진(秦)나라 때는 천하를 36군으로 나누고, 각 군에 군수(郡守)를 두어 백성을 다스리게 하였고, 한(漢)나라 경제(景帝) 때 태수로 고쳐 불렀는데, 그 뒤로 그대로 하였다. 품질(品秩)은 2천 석(石)이었다. 당 고조(唐高祖) 때 군을 고쳐 주(州)로 하여 태수를 자사(刺史)로 칭하였고, 현종(玄宗) 때 다시 태수라 하였다. 송(宋) 이후에는 군을 부(府)로 고쳤다. 때문에 지부(知府)도 태수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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