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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유선록[東國儒先錄], 동국즉부[同國則否], 동국총목[東國總目],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유선록[東國儒先錄]  나중에 국조유선록(國朝儒先錄)으로 책명이 바뀌었다. 유희춘이 1570년(선조4)에 편찬한 것으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의 행적을 담았으며, 5권 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은 이후백(李後白)이 썼다. 권1은 김굉필, 권2는 정여창, 권3은 조광조, 권4·5는 이언적 편으로 이들의 글과 유사(遺事) 등을 모은 것이다. 김굉필 편은 경현록(景賢錄)에서 뽑았으며, 정여창과 조광조는 견문을 수집하고 <경연일기> 등에서 뽑았다. 이언적 편은 회재집(晦齋集)에서 뽑았다. 당시 홍문관 부제학이던 유희춘이 선조의 어명으로 편찬한 것이다. 선조 즉위년 이후 사림 정권 성립을 계기로 기묘사화에 희생된 사람들을 신원하는 운동이 여러 방면에서 일어났는데, 이 책도 그런 사업의 하나였다. 내용도 군왕의 도리·지치(至治)·도학 정치에 관한 상소나 글들이 많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동국즉부[同國則否]  예기(禮記) 집설(集說)에 “공경하여 먼저 절함은 대부와 사가 다른 나라에 빙문(聘問)가서 그 나라의 경과 대부와 사를 만나보는 것을 이르니, 같은 나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敬而先拜, 謂大夫·士聘於他國, 而見其卿·大夫·士也. 同國則否.]”라고 한 데서 보인다.

동국총목[東國總目]  원래 이름은 동국역대총목(東國歷代總目)이다. 1705년(숙종31) 홍만종(洪萬宗)이 편찬자 미상의 명나라 역대총목(歷代總目)의 체재에 따라 단군에서부터 조선 현종 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하였다. 단군조선과 기자조선(箕子朝鮮)을 거쳐 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져 왔다고 보고, 위만조선(衛滿朝鮮)은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낙랑(樂浪)·임둔(臨屯)·현도(玄菟)·진번(眞番)의 한사군(漢四郡)이나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와 동부도독부(東府都督府)의 2부는 항목을 나누어 기재하였으나 왕조로는 인정하지 않았다. 삼한(三韓)은 왕조를 인정하지는 않았으나 삼국 이전의 역사를 증명하는 기간으로 인정하였는데, 특히 진한(辰韓)과 변한(弁韓)은 마한(馬韓)에 속한 것으로 인식하였다. 주희(朱熹)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서 유래된 강목체(綱目體)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필사본과 금속활자본이 전한다.

동국통감[東國通鑑]  동국통감(東國通鑑)은 1484년(성종15)에 서거정(徐居正), 정효항(鄭孝恒) 등이 왕명으로 편찬한 역사책으로,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체례를 본떠서 신라 초기부터 고려 말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하였다. 이기(李芑)가 재상이 되어 사림(士林)을 많이 죽였는데, 어떤 사람이 그에게 “사필(史筆)이 두려워할 만하다.”라고 하니, 답하기를 “동국통감을 누가 볼 것인가?[東國通鑑, 誰人看得乎?]”라고 하였다.

동국통감[東國通鑑]  1484년(성종15) 서거정(徐居正)과 정효항(鄭孝恒) 등이 왕명에 의하여 수찬한 편년체 사서(史書)이다. 권두에 외기(外紀)로 단군조선(檀君朝鮮) 등을 약술하였고, 권1〜8은 신라기(新羅紀), 고구려기(高句麗紀), 백제기(百濟紀)이고 권9〜56은 고려기(高麗紀)이다. 한편 204칙(則)의 사론(史論)이 수록되어 있는데, 사론의 서술자 이름이 밝혀진 경우와 ‘신등안(臣等按)’과 같이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은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동국해성시[東國解聲詩]  청나라 시인 왕사정(王士禎)이 논시절구(論詩絶句) 32수 중 제29수에서 “‘맑은 구름에 가랑비 내리는 소고사, 국화는 수려한데 난꽃은 시드는 팔월.’ 조선 사신의 시어를 기억하나니, 과연 동국은 성시를 잘 이해하는구나.[澹雲微雨小姑祠 菊秀蘭衰八月時 記得朝鮮使臣語 果然東國解聲詩]”라고 읊었는데, 이것은 조선 사신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시를 두고 말한 것이다.

동국화[董國華]  1773~1850. 청나라의 시인이자 관료로 자는 영약(榮若), 호는 금남(琴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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