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東萊] 동래(東萊)는 남송(南宋) 때의 학자 여조겸(呂祖謙)의 호이다. 자는 백공(伯恭), 시호는 충량(忠亮)이다. 하동(河東) 무주(婺州) 금화(金華) 사람으로 여대기(呂大器)의 아들이다. 임지기(林之奇), 왕응신(汪應辰) 등에게 수학하였으며, 동생 여조검(呂祖儉)과 함께 명초산(明招山)에 이택서원(麗澤書院)을 창건하고 강학하였다. 주희(朱熹), 장식(張栻)과 절친하였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들을 동남삼현(東南三賢)이라 불렀다. 아호지회(鵝湖之會)를 개최하여 주자와 육구연(陸九淵)의 학술을 조화시키려 하였고, 영가학파(永嘉學派)의 경세치용 사상을 받아들여 스스로 일가를 이룸으로써 여학(呂學) 또는 금화학파(金華學派)로 일컬어졌다. 저서에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 동래역설(東萊易說), 동래집(東萊集), 동래여태사집(東萊呂太史集), 역대제도상설(歷代制度詳說) 등이 있다.
동래[東萊] 중국 남송 때의 유학자인 여조겸(呂祖謙)의 호이다. 자는 백공(伯恭)이고, 시호는 충량(忠亮)이다. 주희(朱熹) 등과 더불어 강학에 힘써 대성하였으며, 주희, 장식(張栻)과 더불어 동남삼현(東南三賢)으로 일컬어진다. 무학(婺學)의 원조이다. 북송(北宋) 도학자들의 어록을 모아 근사록(近思錄)을 편집하였으며, 역사에도 밝아 좌전설(左傳說),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 등의 저술을 남겼다.
동래가전[東萊家傳] 동래(東萊)는 주자와 함께 근사록(近思錄)을 편찬한 남송(南宋)의 대학자인 여조겸(呂祖謙)의 호로, 자는 백공(伯恭)이다. 가전(家傳)은 동래공가전(東萊公家傳)으로 동래집(東萊集) 권14 <전(傳)>에 실려 있다. 여호문(呂好問)은 여조겸의 증조이다.
동래군[東萊郡] 중국 산동성의 산동반도 끝에 있는 고을 이름이다.
동래박의[東萊博議] 남송(南宋) 때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를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중의 중요한 기사 168 항목을 뽑아 각각 제목을 달고, 주제를 취해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득실을 평론한 것인데 25권으로 되어 있다. 문장이 아름답고 필력이 굳세어서 과거시험을 보는 사람들의 문장 수련에 모범이 되어 왔다. 과거(科擧)에서 논설을 짓는 데 도움 되는 책으로 중국과 조선에서 널리 읽혔다.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는 1592년(선조25) 4월 15일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에서 왜군의 침략에 대응하다 순절한 부사 송상현과 군민들의 항전 내용을 묘사한 그림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기법을 사용하여 치열했던 교전의 장면을 화폭에 나타내었다. 중심에 동래성이 둥글게 자리 잡고 있고 남쪽 성루를 중심으로 동래 병사들이 수비하고 있으며 이들을 공격하기 위해 왜병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성곽 아래쪽으로는 왜군과 죽음의 결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고, 성곽 안쪽 중심에는 붉은 조복을 입고 북쪽을 향해 앉아있는 송상현의 순절장면이 그려져 있으며 북문 밖으로는 성을 버리고 달아나는 경상좌변사 이각(李珏)의 무리들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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