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릉[東陵] 도적의 근거지를 가리킨다. 도척(盜跖)이 동릉(東陵)에서 사람의 간(肝)으로 회를 쳐서 점심 반찬으로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장자(莊子) 변무(騈拇)에 “백이는 명예 때문에 수양산 아래에서 죽었고, 도척은 이익 때문에 동릉 위에서 죽었다.[伯夷死名於首陽之下 盜跖死利於東陵之上]”라는 말이 나온다.
동릉[東陵] 동릉(東陵)은 진(秦) 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졌던 소평(召平)을 말한다. 사기(史記) 권53 소상국세가 제23(蕭相國世家第二十三)에 “소평은 옛 진나라 동릉후이다. 진나라가 망한 뒤에 포의로 가난하게 지내면서 장안성 동쪽에 오이를 심었는데, 오이 맛이 좋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동릉과라고 불렀다.[召平者, 故秦東陵侯, 秦破為布衣貧, 種瓜於長安城東, 瓜美, 故世俗謂之東陵瓜.]”라는 기록이 보인다.
동릉과[東陵瓜] 동릉과(東陵瓜)는 한(漢)나라 소평(邵平)이 청문(靑門) 밖에서 가꾼 맛있는 오이를 이른다. 동릉(東陵)은 진(秦) 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에 봉해졌던 소평(召平)을 말한다. 소평(邵平)이 진나라가 망한 뒤에 포의(布衣)로 가난하게 살면서 장안성(長安城) 청문(靑門) 즉 동문(東門) 밖에서 외밭을 일구며 유유자적하게 은사(隱士)의 생활을 즐겼는데, 그의 외 맛이 좋았으므로, 사람들이 동릉과(東陵瓜: 동릉오이) 혹은 청문과(靑門瓜: 청문오이)라고 불렀던 고사가 전한다. 청문(靑門)은 곧 동문(東門)과 같은 뜻이다. <史記 卷53 蕭相國世家>
동릉대종[銅陵大宗] 동릉현(銅陵縣)의 세가대족(世家大族)이라는 의미이다. 동릉(銅陵)은 현재 안휘성(安徽省)에 속한다.
동릉서산[東陵西山] 동릉(東陵)은 진(秦)나라가 멸망하자 장안성 동쪽에서 참외를 재배한 소평(召平)의 작호인 동릉후(東陵侯)이고, 서산(西山)은 은(殷)나라가 망하자 백이(白夷)와 숙제(叔齊)가 고사리를 캐 먹고 은거한 수양산(首陽山)이다. 진자앙(陳子昂)의 시 감우(感遇)에 “서산에 은거한 늙은이 상심되고, 동릉에는 옛날에 후작이었던 분 있었지.[西山傷遺老 東陵有故侯]”라고 하였다. <陳拾遺集 卷1>
동릉소과[東陵邵瓜] 진(秦)나라 때 동릉후(東陵侯)였던 소평(邵平)이 진나라가 망한 후 몰락하여 장안성(長安城) 동쪽에서 오이를 심어 생계로 삼았는데, 그 맛이 달아서 사람들이 동릉과(東陵瓜)라고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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