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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자산[東里子産], 동리제금[東里製錦], 동리지언[東里之言], 동리지익[東里之益]


동리자산[東里子産]  정(鄭)나라의 공손 교(公孫僑)를 가리키는 말로, 그를 동리자산(東里子産)이라고도 불렀다. 동리(東里)는 그가 살았던 지명이다. 춘추시대 정 나라 재상으로, 간공(簡公) 때부터 국정을 잡아 정공(定公)·헌공(獻公)·성공(聲公) 때까지 수십년 동안 계속 그 자리에 있었는데, 외교 수완이 뛰어나 두 강대국인 진(晉) 나라와 초(楚) 나라의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한 정 나라가 외세로부터의 침략을 전혀 받지 않도록 하여 태평시대를 유지하였다. <史記 卷42 鄭世家>

동리자산윤색[東里子産潤色]  춘추 시대에 정(鄭)나라에서 국가의 사명(辭命)을 지을 때 여러 대부들이 돌아가면서 역할을 맡아 상세하고 정밀함을 다하는 것을 두고, 공자가 말하기를 “사명을 지음에 비침이 초안을 만들고 세숙이 토론하고 행인 자우가 수식하고 동리 자산이 윤색한다.[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産潤色之.]”라고 하여, 각기 그 장점을 다하는 것을 훌륭하게 여겼다. <論語 憲問>

동리정관홍[東里政寬洪]  동리(東里)처럼 정사에 은혜로움. 동리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 대부(大夫)인 자산(子産)을 가리킨다. 그가 동리에 살아서 흔히 동리자산(東里子産)이라고 부른다. 논어(論語) 헌문(憲問)에서, 공자는 자산의 인품에 대해 은혜로운 사람이라고 평하였다.

동리제금[東里製錦]  동리(東里)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의 재상 자산(子産)을 가리킨다. 그가 동리(東里)에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제금(製錦)은 비단을 마름질하는 것이다. 정(鄭)나라 자피(子皮)가 나이 어린 윤향(尹向)을 시켜 읍(邑)을 다스리게 하려 하자 재상인 자산(子產)이 “그대에게 좋은 비단이 있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가지고 바느질하는 법을 배우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子有美錦, 不使人學製焉.]”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31年>

동리지언[東里之言]  동리(東里)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의 재상 자산(子産)을 가리킨다. 그가 동리에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동리의 말은, 정(鄭)나라 자피(子皮)가 나이 어린 윤향(尹向)을 시켜 읍(邑)을 다스리게 하려 하자 재상인 자산(子產)이 “그대에게 좋은 비단이 있다면 사람으로 하여금 그것을 가지고 바느질하는 법을 배우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子有美錦, 不使人學製焉.]”라고 한 말을 가리킨다. <春秋左氏傳 襄公31年>

동리지익[東里之益]  동리(東里)의 유익함. 좋은 글을 보아 글을 윤색함을 이른다. 동리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 대부 자산(子産)이 살던 곳인데, 바로 자산을 가리키기도 한다. 춘추 시대에 정나라는 소국(小國)이었으나 뛰어난 외교를 펼쳤는바, 외교 문서를 만들 적에 마지막으로 동리의 자산이 잘 윤색하여 훌륭한 문서를 만들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論語 憲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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