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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리야모[東里野謀], 동리윤색[東里潤色], 동리음상[東籬吟賞], 동리일타[東籬一朶]


동리야모[東里野謀]  동리(東里)는 춘추 시대 정(鄭)나라 재상인 동리자산(東里子産)으로, 흔히 정자산(鄭子産)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정자산은 수십 년 동안 국정을 잡고 있으면서 두 강대국인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한 정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전혀 받지 않도록 하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정나라의 대부였던 비심(裨諶)이라는 사람이 나라를 위한 계책을 잘 세웠는데, 들판에 나가서 생각하면 좋은 계책을 얻고 도시에서 생각하면 실패하였다. 그러자 정자산이 외국과의 문제가 있으면 그에게 수레를 타고 들판에 가서 가부를 결정짓게 하여, 어려운 외교 문제를 무난하게 처리하곤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31年>

동리연분[東籬緣分]  국화를 가장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 도잠(陶潛)의 시 음주(飮酒)에 “동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물끄러미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 하였다.

동리옹[東籬翁]  동리 노인은 도잠(陶潛)을 가리킨다. 도잠이 동쪽 울타리 가에 국화를 심었으며, 갈건(葛巾)으로 술을 걸러서 마셨다.

동리유상원[東籬幽賞遠]  진(晉) 나라 때 도잠(陶潛)이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국화를 몹시 좋아하였는데, 그가 지은 시 음주(飮酒)에 “동쪽 울서 국화꽃을 따 들고, 한가로이 남쪽 산을 바라다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 하였다. <南史 卷75 隱逸列傳上 陶潛>

동리윤색[東里潤色]  동리(東里)는 춘추전국 시대 정(鄭)나라 자산(子産)의 호이고, 윤색(潤色)은 문장을 다듬는 것으로, 이미 지은 글에 문채를 더하는 것을 이른다. 춘추 시대 정나라에서 사명(辭命)을 만들 때면 네 사람이 합심하여 만드는데, 즉 비심(裨諶)은 초안(草案)을 하고, 세숙(世叔)은 그것을 토론(討論)하며, 행인(行人)인 자우(子羽)가 수정을 더하고, 동리자산(東里子産)이 문채를 더했다고 한다.

동리윤색[東里潤色]  외교 문서의 작성을 의미한다. 춘추 시대에 정(鄭)나라에서 국가의 사명(辭命)을 지을 때 여러 대부들이 돌아가면서 역할을 맡아 상세하고 정밀함을 다하는 것을 두고, 공자가 말하기를 “외교 문서를 작성함에 있어 비심이 초고를 만들고, 세숙이 그것을 토론하고, 행인인 자우가 이를 수식하고, 동리의 자산이 이를 윤색하였다.[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産潤色之.]”라고 하여, 각기 그 장점을 다하는 것을 훌륭하게 여겼다. <論語 憲問>

동리음상[東籬吟賞]  도연명(陶淵明)의 잡시(雜詩: 음주飮酒)에 “동쪽 울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동리일타[東籬一朶]  진(晉) 나라 도연명(陶淵明) 잡시(雜詩)의 “동쪽의 울밑에서 국화를 따다 무심히 남녘 산을 바라본다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에서 나온 것으로, 국화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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