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역사과를 나온 그는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진 않았다.
햇병아리 하사에게도 경례를 하는
유일한 병장이었고
언젠가 달도 없는 밤,
비무장 지대에 산불이 났을 때
느닷없이 튀어올라 눈부시게 폭발하는
조명지뢰를 보며
광주 시민은 폭도가 아니었다고 했을 뿐이다.
인사장교에게 ‘고바우야’ 하고 불리던 그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진 않았다.
총선이 다가오자 배포된
귀국설이 나도는 망명중인 야당 지도자를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팜플렛을 우겨쥐며
구레나룻 까칠한 턱을 내 귀에 대고
야당 지도자는 결코 빨갱이가 아니라고 했을 뿐이다.
내 형과 동갑인 그는
내게 많은 것을 해주진 않았다
겹겹이 둘러싸인 철조망 속에서
내 시를 읽어주는 유일한 독자였고,
말년 휴가 귀대길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소설 한 권을 사다주었을 뿐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였다
전역 대기소로 떠나며
마지막 경례를 하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우호 형! 하고 불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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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 꽃과 제복 / 푸른문학 1994 / 박윤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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