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동사섭[同事攝], 동사역족[凍死亦足], 동사작[凍死雀], 동사직필[董史直筆], 동사찬요[東史簒要]


동사사직[同死社稷]  사직(社稷)은 국가를 가리키는 말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 운명을 함께 함을 이른다.

동사섭[同事攝]  중생을 인도하여 불도(佛道)를 받아들이게 하는 ‘네 가지 방법[四攝法]’ 중 하나로, 중생의 근기(根機)에 따라 갖가지 형체로 나타나서 사업, 고락, 화복 따위를 함께하여 이로 말미암아 불도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동사역족[凍死亦足]  두보(杜甫)의 시 모옥위추풍소파가(茅屋爲秋風所破歌)에 “어떡하면 천만 칸의 널찍한 집을 얻어서, 천하의 빈한한 선비들을 크게 비호하여 모두 즐거운 얼굴이 되게 하고, 풍우에도 동요하지 않고서 산처럼 안정되게 할까. 아, 어느 때에나 눈앞에 우뚝 서 있는 이런 큰 집을 볼거나. 그렇게만 된다면 내 집만 유독 부서져서 얼어 죽는다 하더라도 만족하리라.[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 嗚呼 何時眼前突兀見此屋 吾廬獨破受凍死亦足]”라고 한 데서 보인다. <杜少陵詩集 卷10>

동사자수[同舍自羞]  한 문제(漢文帝) 때 직불의(直不疑)가 낭관(郞官)으로 있었는데, 이 때 동사인(同舍人)이 금(金)을 잃어버리고 직불의를 의심하자, 직불의는 아무런 변명도 없이 그 금을 보상해 주었던 바, 뒤에 직불의의 억울함이 밝혀지자, 금을 잃었던 사람이 대단히 부끄럽게 여겼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史記 卷一百三>

동사작[凍死雀]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하층민을 비유한 것이다. 흘간산은 여름에도 늘 눈이 쌓여 있기 때문에 “흘간산 꼭대기 참새 한 마리 죽었구나, 어찌하여 날아가서 즐겁게 살지 못했는고.[紇干山頭凍死雀 何不飛去生處樂]”라는 속요가 있었다고 한다. <資治通鑒 唐昭宗 天佑元年>

동사장[董斯張]  초명은 사장(嗣暲), 자는 하주(遐周) 또는 원명(原明)으로 명 나라 절강(浙江) 오정(烏程) 사람이다. 저서에 취경집(吹景集)이 있다.

동사직필[董史直筆]  동사(董史)는 춘추 시대 진(晉)나라의 사관(史官)이었던 동호(董狐)를 말한다. 좌전(左傳) 선공(宣公) 2년에 “영공(靈公)이 조돈(趙盾)을 죽이려 하자 조돈이 달아났다. 그리고 나서 조천(趙穿)이 영공을 시해(弑害)했다. 조돈이 돌아와서 조천을 토죄(討罪)하지 않자 동호가 ‘조돈이 임금을 시해했다.’고 직필(直筆)했다.”라고 하였다.

동사찬요[東史簒要]  1606년(선조39)에 조선 중기의 문신인 오운(吳澐)이 지은 역사책이다. 단군조선부터 삼국까지의 본기(本紀) 4책, 지리지(地理志)와 삼국명신(三國名臣) 1책, 고려명신(高麗名臣) 2책, 별록(別錄) 1책 등 8권 8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성룡(柳成龍)이 왕에게 바쳐 유림(儒林)의 표준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책이다. 1609년(광해군1)에 계림부(鷄林府)에서 처음 간행했다가 1614년에 한백겸(韓百謙)의 충고로 <지리지(地理志)>를 첨가하고, 길재(吉再) 등 고려 말의 은자들을 추가해 개찬하였다.

동사후공불가겸[同死後功不可兼]  공자(公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관중(管仲)은 인자(仁者)가 아닐 것입니다. 환공(桓公)이 공자(公子) 규(糾)를 죽였는데 죽지 않았고 또 환공을 도와주었습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어찌 필부필부들이 조그마한 신의(信義)를 위하여 스스로 구독(溝瀆)에서 목매어 죽어서 알아주는 이가 없는 것과 같이 하겠는가.[豈若匹夫匹婦之爲諒也 自經於溝瀆 而莫之知也]”라고 하였다. <論語 憲問> 이에 대해 정자는 “관중은 처음에 공자 규와 함께 모의하였으니, 함께 죽는 것도 괜찮고, 동생을 도와 나라를 다툰 것이 의(義)가 아님을 알고 스스로 죽음을 면하여 후일(後日)의 공(功)을 도모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라고 하여, 관중의 처지에서는 죽는 것도 괜찮고 죽지 않는 것도 괜찮다고 하였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