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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지분[董相之墳], 동상지택[東床之擇], 동상탄복[東床坦腹], 동상합문[東上閤門]


동상용산설[冬賞龍山雪]  송나라 소옹(邵雍)이 지은 한적음(閑適吟)에 “봄에는 낙성의 꽃을 구경하고, 가을에는 천진의 달을 감상하고, 여름에는 숭산의 바람을 쐬고, 겨울에는 용산의 눈을 구경하네.[春看洛城花 秋翫天津月 夏披嵩岑風 冬賞龍山雪]”라고 하였다.

동상이몽[同床異夢]  같은 자리에 자면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같이 행동하면서도 속으로는 각각 딴생각을 하고 있음,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도 목표가 저마다 다름을 이르는 말이다. 동상각몽(同床各夢).

동상지분[董相之墳]  동상(董相)의 묘. 한나라 때 강도 상(江都相)을 지낸 동중서(董仲舒)를 말한다. 그가 죽은 뒤, 그 제자들이 묘를 찾을 때에 멀리서부터 모두 말에서 내렸다고 하고, 한 무제가 근방을 행차함에 항상 이 묘에 이르러 말에서 내렸으므로 하마릉(下馬陵)이라고 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동상지택[東床之擇]  동상(東床)의 선택. 사위로 삼는 것을 말한다. 왕희지(王羲之)가 어려서부터 행실이 뛰어났는데, 치감(郗鑑)이 왕씨 집안의 자제들이 뛰어나다는 소문을 듣고는 사람을 시켜서 왕씨 집에 가서 사윗감을 찾게 하였다. 왕씨 집안의 형제들은 치씨 집안에서 사윗감을 고르기 위해 왔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단정하게 차려 입고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직 왕희지만은 배를 드러낸 채 동상(東床) 위에 누워 있으면서 신색(神色)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윗감을 고르기 위해 왔던 사람이 돌아가서 치감에게 그런 말을 하자, 치감이 “그 사람이 바로 나의 사윗감이다.”라 하고는 딸을 시집보내었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동상탄복[東牀坦腹]  동상(東牀)은 동쪽 평상을 이른다. 진(晉)나라 때 태위(太尉) 치감(郗鑑)이 일찍이 문생(門生)을 시켜 왕도(王導)의 집안에서 사윗감을 구하게 했을 때, 왕도가 그 문생에게 동상(東廂)으로 가서 자제들을 두루 보게 하였는데, 문생이 돌아가서 치감에게 말하기를 “왕씨의 여러 젊은이들이 모두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을 간선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스스로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있었는데, 오직 한 사람은 동쪽 평상에서 큰 배를 드러내 놓고 밥을 먹으면서 홀로 그런 소식을 듣지 못한 것처럼 하였습니다.[王氏諸少幷佳 然聞信至 咸自矜持 惟一人在東床坦腹食 獨若不聞]”라고 하자, 치감이 그를 훌륭한 사윗감으로 여겨 마침내 사위로 삼았던바, 그가 바로 왕희지(王羲之)였더라는 고사에서 온 말로, 여기서 배를 드러냈다는 것은 곧 살이 쪄서 몸이 뚱뚱함을 의미한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동상탄복[東床坦腹]  진(晉)나라 태위(太尉) 치감(郗鑑)이 사윗감을 고르려고 왕 승상(王丞相) 집에 문생을 보냈더니, 왕 승상이 문생에게 동상(東床)에 가서 살피도록 하였다. 문생이 오자 다른 자제들은 의복을 정제하고 손님을 맞이하는데, 왕희지(王羲之)만 배를 드러내 놓고 동상에 누워서 태연자약하였다. 문생이 치감에게 사실대로 고하자 치감이 왕희지를 사위로 택하였다. <世說新語 雅量> 이 고사로 인해 후일에 사윗감을 고르는 것을 동상탄복(東床坦腹)이라 하고 사위를 지칭하기도 한다.

동상합문[東上閤門]  대명궁(大明宮)의 선정전(宣政殿) 왼쪽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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