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두겸[杜兼], 두경승[杜景升], 두경필중[頭頸必中], 두계[豆溪], 두계량[杜季良], 두계무죄[杜雞無罪]


두겸[杜兼]  중국 당(唐) 나라의 문신으로, 자는 처홍(處弘)으로 경조(京兆) 사람이다. 태종(太宗), 고종(高宗) 때의 재상인 두정륜(杜正倫)의 5세손이다. 두우(杜佑)의 보살핌을 받았다. 덕종(德宗) 건중(建中) 원년(780)에 진사가 된 후 호주자사(濠州刺史), 소주자사(蘇州刺史, 하남윤(河南尹) 등을 역임하였다. 부임하는 곳마다 살육과 가렴주구를 일삼아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두경승[杜景升]  고려(高麗)의 무신이며, 만경(萬頃) 두씨(杜氏)의 시조(始祖)이다. 의종 24년(1170)에 내순검 지유(內巡檢指諭)를 거쳐 낭관(郞官)이 되었으며, 명종 3년에는 김보당(金甫當)의 난을 평정했고 뒤에 서북면 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가 되었다. 고려 무신란 시절에 장군이 되어,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서경에서 군사를 일으키자, 1176년 윤인첨(尹鱗瞻)과 함께 서경을 공격하여 조위총을 사로잡아 죽임으로써 난을 진압하였다. 명종 6년에는 상장군 지어사대사(上將軍知御史臺事)가 되었고, 명종 10년에는 공부상서(工部尙書)를 거쳐 명종 26년에는 중서령(中書令)이 되었으며,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자연도(紫燕島)에 유배되어 자살하였다.

두경필중[頭頸必中]  예기(禮記) 옥조(玉藻)에서 군자의 모습을 제시하면서 “머리와 목은 반드시 반듯하게 하며, 산처럼 의연하게 서며, 가야 할 때에 가며, 성덕의 기운이 몸 안에 꽉 차서 양기가 만물을 따뜻하게 품어 주듯 하며, 얼굴은 옥빛이 난다.[頭頸必中 山立時行 盛氣顚實 揚休玉色]”라고 하였다. 주자가 이 문장을 인용해서 정명도의 군자다운 모습을 노래하여 “봄기운처럼 따뜻하고 산처럼 우뚝 섰으며, 옥빛처럼 아름답고 종소리처럼 웅장했다.[揚休山立 玉色金聲]”라고 칭송했다. <朱子全書 六先生畫像讚 明道先生> 일단(一團)에 온화한 기운을 모았다는 것은 ‘명도 선생은 앉아 있을 때에는 흙으로 빚은 소상처럼 근엄하지만 다른 사람을 접할 때에는 혼연히 따사로운 봄기운이다.[明道先生 坐如泥塑 接人則渾是一團和氣]’라는 말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二程外書> 근사록(近思錄) 양휴선생(揚休先生)은 명도(明道) 정호(程顥)를 말한다.

두계[豆溪]  충남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를 이른다. 그곳에 두계의 집안이 대대로 살았다는 은농재(隱農齋)가 남아 있다.

두계량[杜季良]  두계량(杜季良)은 후한(後漢)의 두보(杜保)를 이른다. 계량(季良)은 자(字)이다. 호협(豪俠)하고 의리를 좋아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형의 아들인 마엄(馬嚴)·마돈(馬敦)에게 후덕하고 치밀한 용백고(龍伯高)를 본받고 호협한 두계량(杜季良)을 본받지 말라고 경계하기를 “용백고를 배우다가 제대로 안 되면 그래도 언행을 삼가는 사람은 될 것이니 이는 고니를 새기다가 오리 정도는 되는 격이어서 괜찮지만, 두계량을 배우려다 제대로 안 되면 천하에 경박한 자가 될 것이니 이는 범을 그리다가 개 모양이 되는 꼴이다.[効伯高不得, 猶爲謹勅之士, 所謂刻鵠不成, 尙類鶩者也; 効季良不得, 陷爲天下輕薄子, 所謂畫虎不成, 反類狗者也.]”라고 하였다. 하지만 마원은 그 후에 두보(杜保)와 교분이 있던 양송(梁松)의 모함을 받아 봉호가 환수되기도 하고, 죽은 뒤에는 어떤 사람의 참소를 받아 선산에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성 서쪽에 박장(薄葬)했다가 주발(朱勃)의 간언으로 마침내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 이 때문에 범엽(范曄)이 논찬하기를 “남의 화를 경계한 것은 지혜로웠지만 자신은 참소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 공명의 장(場)에서는 이치가 진실로 그러한 것인가.[其戒人之禍, 智矣, 而不能自免於讒隙, 豈功名之際, 理固然乎?]”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54 馬援列傳>

두계무죄[杜雞無罪]  두계는 죄가 없음. 두계(杜鷄)는 당 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읊은 박계행(縛鷄行)에 나오는 닭을 말하는데, 이는 어떤 종이 벌레를 잡아먹는 닭을 미워하여 꽁꽁 묶어가지고 시장으로 팔러 가는 것을 보고 읊은 것으로, 닭도 팔려가면 죽게 될 것이니 벌레나 닭이나 죽는 건 마찬가지인데, 왜 닭만을 묶는단 말인가? 닭을 풀어줘라 한 내용에서 온 것이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박계행(縛鷄行)에 “종아이가 닭을 묶어 팔러 나가려 하니, 급히 묶인 닭들이 서로 시끄러이 떠드누나. 집 안에서는 닭이 벌레 먹는 것만 싫어하고, 팔려 간 닭이 다시 삶길 줄은 알지 못하네. 벌레와 닭이 사람에게 무슨 후박이 있으랴, 나는 종을 꾸짖어 닭을 풀어놓게 하였네. 닭과 벌레의 득실은 다하는 때가 없겠지, 찬 강물을 눈여겨보며 산각에 기대 있노라.[小奴縛雞向市賣, 鷄被縛急相喧爭. 家中厭鷄食蟲蟻, 不知鷄賣還遭烹. 蟲鷄於人何厚薄, 吾叱奴人解其縛. 鷄蟲得失無了時, 注目寒江倚山閣.]”라고 하였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