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반우[劙盤盂] 려(劙)는 자른다는 뜻이다. 반우(盤盂)는 구리로 만든 쟁반과 대야인데, 고대에는 이것을 가지고 칼날이 잘 드는가를 시험하였다고 한다. 순자(荀子) 강국편(彊國篇)에, 국가를 부강(富強)하게 만드는 방법을 칼을 만드는 일에 비유하여 “거푸집이 반듯하고, 구리쇠와 주석(朱錫)의 질이 좋으며 대장장이의 기술이 정교하고 불길의 강도와 재료의 배합이 적당한 뒤에, 거푸집을 열면 막야(莫邪)와 같은 명검이 된다. 그러나 껄끄러운 표면을 긁어 제거하지 않고 숫돌에 갈지 않는다면 새끼줄도 자를 수가 없다. 그 껄끄러운 표면을 긁어 제거하고 숫돌에 간다면 쟁반과 대야를 가르고 소와 말을 베는 일은 간단하다.[刑范正, 金錫美, 工冶巧, 火齊得, 剖刑而莫邪已. 然而不剝脫, 不砥厲, 則不可以斷繩. 剝脫之, 砥厲之, 則劙盤盂, 刎牛馬, 忽然耳.]”라고 한 데서 보인다. 쟁반과 대야를 가르고 소와 말을 베는 것은 대체로 옛날에 이 방법으로 검의 품질을 시험했던 것이다.
려배흥[驢背興] 나귀 등의 흥취. 시 읊는 흥취를 말한다. 당(唐)나라 맹호연(孟浩然)이 눈 내리는 파교(灞橋)에서 나귀를 타고 시를 읊었던 고사를 차용한 것으로, 시상(詩想)에 깊이 잠겼음을 나타낸다. 소동파(蘇東坡)의 시 증사진하수재(贈寫眞何秀才)에 “또 보지 못했는가? 눈 속에 나귀를 탄 맹호연이 눈썹을 찌푸리고 시를 읊으매 쭝긋한 어깨가 산처럼 높았던 것을.[又不見雪中騎驢孟浩然, 皺眉吟詩肩聳山.]”라고 하였다.
려왕[厲王] 서주의 10대 왕으로, 즉위 연도는 알 수 없으나 기원전 841년에 죽었다. 려왕이 위나라에서 무당을 데려와 공포정치를 행하자 국인(國人)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려왕은 체(彘) 땅으로 도망가서 살고 주나라는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섭정을 행했다. 주공과 소공 두 사람은 려왕이 체 땅에서 14년만에 죽자 그의 아들 정(靜)을 왕위에 앉히고 주나라의 통치권을 돌려주었다. 선왕의 아들인 유왕(幽王)이 서주의 마지막 왕이다. 이 14년간의 기간을 공화(共和)라 하고 려왕이 체 땅으로 도망간 해인 기원전 841년을 공화 원년이라 한다. 중국의 역사기록은 대략적으로 전해 내려오다가 이 해를 기점으로 분명해 지며 사마천 사기(史記)의 제후연표도 이 해부터 시작한다.
려우[犁雨] 보습 비. 쟁기질을 할 만큼 알맞게 내린 비를 말한다.
려전이창제[臚傳而唱第] 과거 급제자를 발표할 때 전상(殿上)에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소리를 높여 차례로 이름을 전하여 부르는 의식이다. 이를 여창(臚唱)이라 한다.
려파동[荔波洞] 송나라 때 의주에 있었던 지명이다. 지금의 광서(廣西) 여파현(荔波縣) 안에 있었다.
려핍기[驢乏技] 나귀의 부족한 재주. 자신의 솜씨가 졸렬함을 말한 것이다. 금주(黔州)에는 본디 나귀가 없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귀를 싣고 들어갔다가 아무런 쓸모가 없어 산 밑에 풀어 놓았더니, 호랑이가 처음에는 나귀의 큰 체구와 큰 울음소리 때문에 대단히 무서워했는데, 그 후 나귀와 점차 가까워진 다음 나귀의 발길에 한 번 채여 보고는, 나귀에게 그 밖의 다른 능력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나귀를 물어 죽였다고 한다. <柳河東集 卷19 黔之驢>
려희[麗姬]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총애하던 부인. 국어(國語) 진어(晉語)와 예기(禮記) 단궁 상(檀弓上)에 자세한 기록이 나오며 예기(禮記)에는 驪姬(여희)로 표기되어 있다.
력력[瀝瀝] 물소리 바람소리를 형용한다.
력력[歷歷] 분명한 모양.
련련[漣漣] 눈물 흘리는 모양.
련비[聯臂] 다른 사람을 통하여 간접으로 소개함. 서로 이리저리 알게 됨. 여기서는 벼개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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