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가[輓歌] 상여(喪輿)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죽은 사람을 애도(哀悼)하는 노래를 뜻한다.
만가[挽歌] 구전민요(口傳民謠)의 하나. 죽은 이를 애도(哀悼)하는 시가(詩歌). 수레를 끌면서 부르는 노래. 상여를 메고 갈 때 사자를 애도하며 부르는 노래로, 주검을 매장한 뒤에 흙을 다지면서 부르기도 한다. 안씨가훈(顔氏家訓)에 “만가(挽歌)의 가사에 대해 어떤 이는 옛날 장송곡(葬送曲)인 우빈(虞殯)의 노래였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전횡(田橫)의 빈객(賓客)들에게서 나왔다고 하는데, 어느 경우나 다 산 사람이 죽은 이를 애도하고 슬픈 마음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육기(陸機)는 죽은 이가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을 많이 썼는데, 시 형식에 이러한 예는 없을 뿐만 아니라 만가를 만드는 본래의 취지와도 어긋난다.[挽歌辭者, 或云古者虞殯之歌, 或云出自田橫之客, 皆為生者悼往告哀之意. 陸平原多為死人自歎之言, 詩格既無此例, 又乖製作本意.]”라고 하였다.
만가[滿假] 마음에 만족하여 스스로 위대한 척함. 자만심이 많아 거만하게 굶. 만가(滿假)의 만(滿)은 자만하다는 뜻이고, 가(假)는 대단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에 보이는데, 순 임금이 우(禹)를 칭송하면서 “국사에 부지런하고 집안에서 검소하여 스스로 자만하지 않는 것이 너의 어짊이다.[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라고 하였다.
만가남산수[晩家南山陲] 왕유(王維)의 시 종남별업(終南別業)에 “중년부터 방외의 도를 퍽 좋아했는데, 만년에야 남산 모퉁이에 집을 지었네.[中歲頗好道 晩家南山陲]”라고 하였다. <王右丞集 卷3>
만가실[萬家室] 만호(萬戶)의 집. 당현종(唐玄宗) 개원(開元) 연간에는 세금이 안정되고 관리들도 부패하지 않은 시기여서 백성들의 살림살이에도 여유가 있었던 것을 가리킨다. 두보(杜甫) 시 억석(憶昔: 옛날을 생각함)에 “개원의 전성시대를 회상하니, 작은 읍에도 만호집이 차있고. 입쌀은 기름지고 좁쌀은 실하니, 나라에나 개인이나 곡식이 가득 찼네.[憶昔開元全盛日, 小邑猶藏萬家室. 稻米流脂粟米白, 公私倉廩俱豊實.]”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만가양류녹연[滿街楊柳綠絲煙] 당(唐)나라 위장(韋莊)의 시 병진년부주우한식성외취음칠언오수(丙辰年鄜州遇寒食城外醉吟七言五首)에 “거리 가득 버들가지에는 푸른 실이 안개 같으니, 청명의 이월 하늘을 그려 내네. 발 너머로 꽃 그림자 흔들리고, 소녀는 어지러이 그네를 타네.[滿街楊柳綠絲煙, 畫出青春二月天. 好是隔簾花影動, 女郎撩亂送鞦韆.]”라고 한 데서 보인다.
만가춘[萬家春] 동파(東坡) 소식(蘇軾)이 자신이 직접 빚은 술에 붙인 이름이다. 그의 시 화도기유세구월구일(和陶己酉歲九月九日)에 “내가 빚은 만가춘이라는 술은, 한 잔만 마셔도 오류선생 도연명처럼 취할 수 있네.[持我萬家春, 一酬五柳陶.]”라고 하였고, 완계사(浣溪沙)에서는 “눈꽃이 떠다니는 만가춘을 마시고, 취해서 돌아오는 강변길에 매화 새로 피었네.[雪花浮動萬家春, 醉歸江路野梅新.]”라고 하였는데, 그 서문에 “근래에 내가 손수 술을 빚어서 만가춘(萬家春)이라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영남에서 많이 빚는 만호주(萬戶酒)이다.[余近釀酒, 名之曰萬家春, 蓋嶺南萬戶酒也.]”라고 하였다.
만각조[慢角調] 완만한 각조. 각조는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 오음 중 하나로서 청탁고하(淸濁高下)의 한중간에 위치한 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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