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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작[末作], 말재[韈材], 말절[末節], 말제[末帝], 말조[末照], 말즉시본[末卽是本]


말작[末作]  농업(農業)에 상대하여 상공업(商工業)을 일컫는 말이다. 고대에 농업을 중시해서 상공업을 말작이라 하였다. 주례(周禮) 태재(太宰) 9부(賦)의 소(疏)에 “선왕들은 농업을 근본으로 삼았으므로 이를 평민이라고 불렀으며, 농민이 아닌 자들은 말작(하위 계층)이라고 하였다.[先王, 以農爲本, 故謂之平民, 非農民者爲末作.]”라고 하였다.

말재[襪材]  말재(韈材). 버선 감. 말재(襪材)는 그림 그리는 데 사용하는 흰 비단을 발싸개감이라고 장난삼아 이른 것이다. 송나라 문동(文同)이 대나무를 잘 그렸는데, 사방에서 사대부들이 비단을 가지고 와서 그림을 청하는 것이 끊이지 않음을 싫증을 내고 비단을 땅에 내던지며 “내가 장차 버선 재료로 삼을 것이다.[吾將以爲韈.]”라고 하였다. 소식(蘇軾)의 문여가화운당곡언죽기(文與可畫篔簹谷偃竹記)에 상세히 보인다.

말재[韈材]  중국 북송(北宋)의 문동(文同)은 묵죽(墨竹)에 뛰어났다. 이종사촌인 소식(蘇軾)이 그에게서 묵죽을 배웠으므로 사람들이 이들을 ‘문소(文蘇)’로 병칭하였다. 문동이 양주(洋洲)에 있을 때 사람들이 너도나도 비단을 가지고 와서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자 비단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내가 이것으로 버선이나 만들어야겠다.[吾將以爲韈.]”라고 욕하였다. 뒤에 문동은 사람들에게 “우리 묵죽 일파가 근래에 팽성의 소식에게 있다.”라고 하고, 소식에게 “버선 재료가 마땅히 그대에게 몰려들 것이다.[韈材當萃於子矣.]”라고 하였다. <東坡全集 卷36 文與可畫篔簹谷偃竹記> 이후 ‘버선 재료[韈材]’는 그림을 그릴 비단이나 시를 쓸 종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말절[末節]  본질적인 아닌 부분. 사소한 일. 끝 부분. 맨 끝절. 지엽(枝葉)에 관한 일.

말제[末帝]  오대(五代) 후량(後梁)의 마지막 임금 주우정(朱友貞)을 이른다. 후량(後梁) 태조(太祖) 주전충(朱全忠)의 셋째 아들로 균왕(均王)에 봉해졌다. 주우규(朱友珪)가 부친을 죽이고 즉위하자 얼마 뒤 병사를 일으켜 주우규를 죽이고 즉위하였다. 왕언장(王彦章)이 진왕(晉王) 이존욱(李存勖)과 싸우다 패하여 변경(汴京)이 함락되자 신하인 황보인(皇甫麟)의 손을 빌려 목숨을 끊었고 이로써 후량은 멸망하였다.

말제[末帝]  후량(後梁)의 마지막 황제 주우정(朱友貞)을 가리킨다. 후량 태조(太祖) 주온(朱溫)의 셋째 아들이다. 성격이 침착하고 후덕하면서 말수가 적었고, 유사(儒士)를 좋아했다. 태조가 즉위하자 균왕(均王)에 봉해졌다. 주우규(朱友珪)가 등극하자 동경유수(東京留守)와 개봉윤(開封尹)을 역임하였는데 얼마 뒤 병사를 일으켜 주우규를 살해하였다. 즉위하자 이름을 굉(鍠)이라 고치고 연호를 건화(乾化)로 고쳤다. 얼마 뒤 이름을 다시 진(瑱)으로 고쳤다. 진왕(晉王) 이존욱(李存勖)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으나 결국 패하여 죽임을 당하고 후량은 멸망하였다.

말조[末照]  말조(末照)는 여휘(餘輝)와 같은 말로, 덕의 광휘를 뜻한다. 명(明)나라 유기(劉基)의 부부집서(覆瓿集序)에 “후진의 선비들이 아름다운 풍격을 사모하고 남긴 덕휘를 앙모하여 선생의 문장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後進之士, 景休風·仰末照, 幸先生之文章猶有存者耳.]”라고 하였다.

말즉시본[末卽是本]  말단이 곧 그 근본임. 논어(論語) 자장(子張) 자하문인소자장(子夏門人小子章) 주희(朱熹)의 주에 “말단이 곧 근본이므로 그 말단만 배우면 근본은 곧 거기에 들어 있다고 이른 말이 아니다.[非謂末卽是本但學其末. 而本便在此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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