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예[望瘞] 제사 지낸 뒤에 축문을 구덩이에 묻는 일. 사직(社稷), 산천(山川) 등 지기(地祇)에 대한 제사나, 종묘(宗廟)나 선농(先農), 선잠(先蠶) 등 인귀(人鬼)에 대한 제사가 끝나면 대축(大祝)이 제사에 사용한 축문(祝文)과 폐백(幣帛) 등을 광주리에 담아서 예감(瘞坎)에 묻는 것을 헌관(獻官)과 집례(執禮)가 지켜보는 의식이다.
망예위[望瘞位] 망예(望瘞)하는 의식을 지켜보는 자리이다. 제사를 끝마치고 축문과 폐백을 파묻을 때 헌관(獻官)과 집사(執事)가 이를 지켜보던 일을 망예(望瘞)라 한다.
망예위[望瘞位] 제사를 마친 후 예감(瘞坎)을 감독하기 위해 만든 자이리다. 예감은 축문이나 폐백을 불사르는 곳으로, 실내에서는 화로에, 실외에서는 구덩이에서 한다.
망예위[望瘞位] 종묘·문묘 등의 제사가 끝난 뒤에 축문과 폐백을 파묻는 것을 헌관(獻官)이 지켜보던 자리로, 사당 서쪽에 있다.
망오[望五] 50세를 바라봄. 쉰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나이 마흔 하나(41세)를 일컫는 말. 궁중(宮中)에서 임금, 왕후(王后), 왕대비(王大妃)의 나이 쉰이 되기 이삼 년 전(前)에 베푸는 경축연(慶祝宴)
망옥[蟒玉] 망의옥대(蟒衣玉帶)의 줄임말로, 옛날 고관들의 복식을 말한다. 망(蟒)은 큰 구렁이인데 옷에 구렁이 문양을 수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망올[網兀] 망얽이. 새끼나 노끈으로 그물을 뜨듯이 얽은 물건을 말한다.
망올령[亡兀嶺] 인재가 개경을 출발하여 양주의 평구역(平丘驛)에 이르는 도중에 넘었던 고개인 듯하다.
망외[望外] 바라던 것 이상임. 기대 이상. 바라던 이상의 것. 뜻밖. 생각 밖. 의외. 참고로, 송(宋)나라 반자목(潘自牧)이 편찬한 기찬연해(記纂淵海) 권59 논의부(論議部)에 “일은 생각지 못한 데에서 일어난다.[事出望外]”라고 하였다.
망요지적[忘腰之適] 관직을 떠나 고요하고 한적하게 지냄을 이른다. 소식(蘇軾)의 사사대의금대마표(謝賜對衣金帶馬表)에 “좋은 말을 신(臣)에게 하사하시니 감히 먼 곳을 달려가는 수고로움을 잊겠습니까? 좋은 금대(金帶)를 차니 다시는 허리가 헐렁한 한가로움이 없게 되었습니다. 채찍을 잡고 일할 것을 청하나 자신을 돌아봄에 부끄러움을 압니다.[錫之上駟, 敢忘致遠之勞. 佩以良金, 無復忘腰之適, 執鞭請事, 顧影知慙.]”라고 한 데서 보인다. 당대의 관리들은 모두 허리에 요대(腰帶) 두르고 홀(笏)을 꽂고 금(金)을 패용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망용의[蟒龍衣] 망룡의(蟒龍衣)는 붉은 바탕에 구렁이를 그린 것인데 외국의 왕에게 간간이 내려 주는 것이다. 망의(蟒衣)라 하여 큰 구렁이의 무늬를 수놓은 예복을 가리키는데, 명나라 제도에 금의위 당상관(錦衣衛堂上官)이 붉은 망의를 입고, 또 재상과 외국 임금에게 내려 주었다고 한다. 선조 20년 정해년(1587)에 방물(方物)을 도둑맞고 옥하관(玉河館)이 불에 탄 일 때문에 진사사(陳謝使)로 배삼익(裵三益)을 차임하여 북경에 보냈는데, 황제가 우리나라에서 지성으로 사대한다 하여 칙서를 내려 표창하고, 또 망룡의를 하사한 일이 있다.
망용자[妄庸子] 평범하고 하는 짓이 그렇고 그런 사람을 가리킨다. 사기(史記) 제도혜왕세가(齊悼惠王世家)에 “관영이 형양에 있을 때, 위발이 제왕에게 모반을 교사한 것에 대해 들었는데, 여씨들이 토벌되고 제나라 군대가 해산된 뒤에 사신을 시켜 위발을 불러 나무랐다. 위발이 ‘집에 불이 났는데 어찌 주인에게 먼저 알리고 불을 끄겠습니까?’라고 하고는 물러나 서 있는데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관장군이 그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웃으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위발을 용맹하다 하더니 그저 그런 사람이로구나. 그래갖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는 위발을 파면하였다.[灌嬰在滎陽, 聞魏勃本敎齊王反, 旣誅呂氏, 罷齊兵, 使使召責問魏勃. 勃曰: 失火之家, 豈暇先言大人而後救火乎! 因退立, 股戰而栗, 恐不能言者, 終無他語. 灌將軍熟視笑曰: 人謂魏勃勇, 妄庸人耳, 何能爲乎! 乃罷魏勃.]”라고 한 데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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