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는 마음이 그치면
달이 떠오고 바람이 불어오니
굳이 인간세상을 고해라 할 것 없다.
마음이 아득히 먼 곳에 있으면
수레먼지 말발굽소리 절로 사라지니
굳이 깊은 산 속의 삶만 그리워 할 것 없다.
機息時, 便有月到風來, 不必苦海人世.
기식시, 변유월도풍래, 불필고해인세.
心遠處, 自無車塵馬迹, 何須痼疾丘山.
심원처, 자무거진마적, 하수고질구산.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기식[機息] 마음의 활동을 쉼. 기심(機心)이 사라짐. 책략(策略)을 꾸미는 마음이 없어짐. 교활하고 변덕스러운 마음이 없음. 기(機)는 심기(心機)로 마음을 움직이는 작용을 이른다.
- 기심[機心] 교묘하게 속이는 간교(奸巧)한 마음. 계교(計較)하는 마음. 교사(巧詐)하는 마음. 기교(機巧)를 부려 사리(私利)를 꾀하는 마음. 책략(策略)을 꾸미는 마음. 기회를 노리는 마음. 기회를 보고 움직이는 마음. 이해득실을 따지는 마음. 자기의 양심을 속임. 자신의 사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교묘하게 도모하는 마음. 기계지심(機械之心). 기교지심(機巧之心). 장자(莊子) 천지(天地)에 “공자(孔子)의 제자 자공(子貢)이 초(楚)나라에 노닐고 진(晉)나라로 돌아오는 길에 한수(漢水)의 남쪽을 지나다 보니, 한 노인이 우물을 파서는 항아리를 안고 그 속으로 들어가 물을 퍼서 밭에 붓고 있었다. 이에 자공이 ‘기계가 있다면 하루에 상당히 많은 밭에 물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을 아주 적게 들이고도 그 효과는 클 것입니다. 왜 기계를 쓰지 않으십니까? 나무에 구멍을 뚫어 만든 기계인데 뒤는 무겁고 앞은 가볍습니다. 손쉽게 물을 풀 수 있는데 빠르기가 물이 끓어 넘치는 것 같습니다. 그 이름을 용두레[桔槹 용두레]라고 합니다.’라고 하니, 그 노인이 성난 기색을 띠었다가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우리 선생님께 듣기로는 기계(機械)를 가진 자는 반드시 기계를 쓸 일[機事]이 생기게 되고, 기계를 쓸 일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기계에 대해 마음을 쓸 일이 있게 되고, 기계에 대한 마음 쓰임[機心]이 가슴에 차 있으면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고, 순박함이 갖추어지지 않게 되면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하게 되고, 정신과 성격이 불안정한 사람에게는 도가 깃들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나는 기계의 쓰임을 알지 못해서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吾聞之吾師, 有機械者心有機事, 有機事者必有機心. 機心存於胸中, 則純白不備. 純白不備, 則神生不定. 神生不定者, 道之所不載也. 吾非不知, 羞而不爲也.]’라고 대답하였다는 데서 보이고,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바닷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갈매기를 몹시 좋아하여 매일 아침 바닷가로 가서 갈매기와 놀았는데, 날아와서 노는 갈매기가 백 마리도 넘었다. 그의 아버지가 ‘내가 들으니 갈매기들이 모두 너와 함께 논다고 하던데, 네가 그 갈매기를 잡아와라. 나 역시 갈매기를 가지고 놀고 싶다.’라 하였다. 다음날 바닷가로 나가니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기만 하고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海上之人有好漚鳥者, 每旦之海上, 從漚鳥游, 漚鳥之至者百住而不止. 其父曰: 吾聞漚鳥皆從汝游, 汝取來! 吾玩之. 明日之海上, 漚鳥舞而不下也.]”는 이야기에서 보인다. 참고로,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 고풍(古風)에 “나 또한 마음을 씻은 자이니, 기심을 잊고 너를 따라 노닐련다.[吾亦洗心者, 忘機從爾遊.]”라고 하였고, 소식(蘇軾)의 시 강교(江郊)에 “낚시만 생각하고 고기는 잊고서, 이 낚싯대와 줄만 즐기노라. 한가로이 유유자적하며 사물의 변화를 완상한다.[意釣忘魚 樂此竿綫 優哉悠哉 玩物之變]”라고 하였다.
- 월도풍래[月到風來] 달이 떠오르고 바람이 불어옴. 참고로, 북송(北宋)의 학자 소옹(邵雍)의 시 청야음(淸夜吟)에 “달은 하늘 한가운데 이르고, 바람은 물 위에 살살 부누나. 이러한 맑고 깨끗한 의미를, 아마도 아는 사람이 적으리.[月到天心處, 風來水面時. 一般淸意味, 料得少人知.]”라고 하였데, 이 시는 곧 물과 달이 서로 비치는 맑은 정경을 서술한 것으로, 마치 광풍제월(光風霽月)처럼 가슴속이 깨끗하여 조금의 사욕도 없이 조용히 도에 합치되는 경지를 의미한다. 또, 소옹(邵雍)의 시 월도오동상음(月到梧桐上吟)에 “달은 오동나무 위에 올라오고, 바람은 버드나무 가에 불어오네. 깊숙한 정원에 인적조차 고요해라. 이런 경관을 뉘와 함께 말한단 말가.[月到梧桐上, 風來楊柳邊. 院深人復靜, 此景共誰言?]”라고도 하였다.
- 불필[不必] 필요(必要)가 없음. ~하지 마라. ~할 필요가 없다. ~할 것까지는 없다.
- 심원[心遠] 세속의 명리에 관심이 없는 것. 세속의 명리에 연연하지 않음. 품은 뜻이 크고 넓다. 속세(俗世)에서 마음이 멀어지다. 소원하다. 쌀쌀하다. 뜻이 원대하다. 참고로, 도연명(陶淵明)의 시 음주(飮酒) 20수 중 다섯 번째 시에 “내 집이 사람 사는 동네에 있어도, 내 귀에는 시끄러운 거마 소리가 안 들리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마음이 멀면 땅은 절로 외진다고 답하겠소.[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거진마적[車塵馬迹] 수레먼지와 말발자국. 수레에서 일어나는 먼지와 말발굽에서 일어나는 소리. 속세(俗世). 세상의 번잡함을 의미한다. 참고로, 구양수(歐陽脩)의 상주주금당기(相州晝錦堂記)에 “평범한 백성과 우매한 아낙은 급히 도망하며 놀라 땀을 흘리고 부끄러워하며 부복하여 수레 먼지와 말발굽 사이에서 자신의 죄를 후회한다.[庸夫愚婦者, 奔走駭汗, 羞愧俯伏, 以自侮罪於車塵馬足之間.]”라고 하였고, 주희(朱熹)의 와룡암기(臥龍庵記)에 “나는 이미 황폐하고 버려진 땅의 자투리에 나온 것을 아쉽게 생각하면서도, 또한 다행스러운 것은 깊이 막혀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서 수레바퀴 자국이나 말발굽 흔적이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余既惜其出於荒堙廢壤之餘, 而又幸其深阻夐絶, 非車塵馬跡所能到.]”라고 하였다.
- 하수[何須] 하필(何必). 구태여 ~할 필요가 있겠는가. 어찌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할 필요가 없다. 무엇이 다른가[何異]. 참고로, 조식(曹植)의 시 야전황작행(野田黃雀行)에서 “날카로운 칼 한 자루 내 손 안에 없는데. 친구가 많다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利劍不在掌 結友何須多]”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빈교행(貧交行)에 “손 뒤집으면 구름이요 손 엎으면 비로다. 경박한 작태 분분함을 어찌 셀 거나 있으랴.[翻手作雲覆手雨, 紛紛輕薄何須數.]”라고 하였고, 당(唐)나라 이교(李嶠)의 시 상청휘각우설(上淸暉閣遇雪)에 “이는 바로 신선이 경포를 대한 격이니, 무엇하러 옛 자취 찾아 요지로 가겠는가.[即此神仙對瓊圃, 何須轍跡向瑤池.]”라고 하였고, 왕안석(王安石)의 절구(絶句: 만사萬事)에 “닭과 벌레의 득실이야 어찌 따질 것 있으랴만, 붕새와 뱁새는 자적할 줄을 각기 안다오.[鷄蟲得失何須算 鵬鷃逍遙各自知]”라고 한 데서 보인다.
- 고질구산[痼疾丘山] 산수(山水)를 좋아하는 고집(固執)스러운 병(病)을 이른다.
- 고질[痼疾] 단단히 난 병, 쉽게 낫지 않는 병. 쉽게 고칠 수 없는 병. 예전에 고황(膏肓)에 난 병을 이르던 말이다. 고황(膏肓)은 급소인데다 바로 옆에 심장이 있어 중국의 명의 편작(扁鵲)도 고치지 못한다고 할 정도의 병이다. 고황지질(膏肓之疾). 참고로, 후한(後漢) 시대 건안 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유정(劉楨)이 조비(曹丕)에게 보낸 시 증오관중랑장(贈五官中郞將)에 “나는 깊은 고질병에 걸린 채, 맑은 장수 가에 숨어사네.[余嬰沈痼疾, 竄身淸漳濱.]”라고 한 데서 보이고, 구당서(舊唐書) 권192 전유암전(田游巖傳)에, 전유암(田游巖)이 당 고종(唐高宗)에게 “신은 물과 바위에 대한 병이 이미 고황에 들고 연무(煙霧)와 노을에 고질병이 들었는데, 성상의 시대를 만나 다행히 소요하고 있습니다.[臣泉石膏肓煙霞痼疾 旣逢聖代 幸得逍遙]”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 구산[丘山] 언덕과 산. 산악. 산림. 자연. 은거지. 숨어사는 곳. 산더미. 묘지. 중대한 일. 물건이 많이 쌓인 모양. 비유적으로 무겁고 크고 많은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참고로, 장자(莊子) 제25편 칙양(則陽)에 “언덕이나 산은 낮은 토지가 쌓여서 높게 된 것이고, 장강(長江)과 황하(黃河)는 작은 물이 모여서 크게 된 것이고, 대인(大人)은 만물의 사(私)를 하나로 병합하여 공평하게 베푼 것이다.[丘山積卑而爲高, 江河合水而爲大, 大人合幷而爲公.]”라고 하였고,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에 “제(齊)나라 영토는 사방方2천 리, 병력은 수십 만, 양식은 산처럼 쌓여 있다.[齊地方二千里, 帶甲數十萬, 粟如丘山.]”라고 하였고, 두보(杜甫)의 시 고백행(古栢行)에 “큰 집이 무너지려면 들보가 중요하니, 구산처럼 무거워 만 마리 소 고개 돌리누나.[大廈如傾要梁棟, 萬牛回首丘山重.]”라고 하였고, 진서(晉書) 권79 사안전(謝安傳)에 “진(晉)나라 양담이 그의 외숙인 사안(謝安)의 사랑을 받았는데, 사안이 죽자 양담은 여러 해 동안 음악을 듣지 않고 그가 살던 서주(西州)의 길을 경유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대취하여 부축을 받은 채 노래를 부르며 가다가 서주의 문에 이르고 말았다. 이에 양담이 매우 슬퍼하여 채찍으로 문을 두드리며 ‘살아서는 화려한 집에서 살더니, 죽어서는 산언덕으로 돌아갔네.[生存華屋處, 零落歸丘山.]’라는 조식(曹植)의 시 공후인(箜葔引)을 읊었다”는 고사가 있다.
【譯文】 機息心淸, 月到風來.
機心止息的時候就會有明月淸風到來, 沒必要沉淪苦海艱難人生 ; 心胸曠遠的地方自然無車馬行過痕跡, 何必要眷戀山林隱居生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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