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를 뒤엎는 사나운 말도
길들이면 부릴 수 있고
마구 튀는 쇳물도
거푸집에 들어가면 기물이 된다.
우유부단하여 떨쳐 일어나지 않으면
평생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백사가 말하였다.
“사람으로서 괴로움 많음은 부끄러울 것 없으나, 평생토록 괴로움 없는 것이 나의 근심이다.”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泛駕之馬可就馳驅, 躍冶之金終歸型範.
봉가지마가취치구, 약야지금종귀형범.
只一優遊不振, 便終身無個進步.
지일우유부진, 변종신무개진보.
白沙云 : “爲人多病未足羞, 一生無病是吾憂.” 眞確論也.
백사운 : “위인다병미족수, 일생무병시오우.” 진확론야.
<채근담菜根譚/명각본明刻本(만력본萬曆本)/전집前集>
- 봉가지마[泛駕之馬] 수레를 뒤엎는 말. 상도(常道)를 따르지 않는 영웅을 비유한다. 한서(漢書) 무제 본기(武帝本紀)의 “수레를 엎어 버리는 말이나 법도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어떻게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夫泛駕之馬 跅弛之士 亦在御之而已]”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 가취[可就] ~하면 곧. 바로. 틀림없이. 가히 이루다. 가히 따르다. 참고로, 유비(劉備)가 형주(荊州) 신야(新野)에 있을 때, 서서가 “제갈공명은 와룡입니다. 장군께서는 혹시 그를 만나보고 싶지 않으십니까?[諸葛孔明者, 臥龍也. 將軍豈願見之乎?]”라고 하여 제갈량을 추천한 뒤, 유비로 하여금 직접 찾아가도록 하면서 “이 사람은 가서 만나볼 수는 있어도 굽혀서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此人可就見, 不可屈致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三國志 蜀志 諸葛亮傳>
- 치구[馳驅] 말이나 수레 따위를 타고 달림. 말을 몰아 빨리 달림. 남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다.
- 치구[馳驅] 분주히 뛰어다니다. 말에 채찍질을 해서 빨리 달리게 하다. 사자(使者)가 왕사(王事)를 위해 말을 급히 달리는 것을 의미하는바, 시경(詩經) 소아(小雅) 황황자화(皇皇者華)에 “반짝반짝 빛나는 꽃들이여, 저 언덕이랑 진펄에 피었네. 부지런히 달리는 사나이는, 행여 못 미칠까 염려하도다.……내가 탄 말은 인마인데, 여섯 가닥 고삐가 고르도다. 이리저리 채찍질하여 달려서, 두루 찾아서 자문을 하도다.[皇皇者華 于彼原隰 駪駪征夫 每懷靡及……我馬維駰 六轡旣均 載馳載驅 周爰咨詢]”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치구[馳驅]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함. 치구(馳驅)는 구치(驅馳)와 같은 말로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出師表)에 “신은 본래 평민으로서 몸소 남양(南陽) 땅에서 농사지어 난세에 구차하게 생명을 보존하려 하였고 제후들에게 알려지거나 영달하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선제(先帝)께서는 신을 비루하다고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이 직접 왕림하시어 초려(草廬) 가운데로 세 번이나 신을 찾아 주시고 신에게 당시의 일을 자문하시니, 신은 이 때문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께 구치(驅馳)할 것을 허락했습니다.”라고 한 데서 보인다. <三國志 卷35 蜀書 諸葛亮傳>
- 치구불획[馳驅不獲] 치구(馳驅)는 말이나 수레를 모는 것을 이른다. 왕량은 옛날 말을 잘 몰았던 사람이다. 왕량이 일찍이 조 간자(趙簡子)의 행신(幸臣) 해(奚)를 태우고 말을 법대로 몰자, 해가 온종일 짐승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는 왕량을 일러 천하의 천공(賤工)이라고 했다가, 그 후에 왕량이 다시 해를 태우고 고의로 말 모는 법도를 지키지 않고 짐승을 속여서 만나게 해 주자, 해가 하루아침에 짐승을 열 마리나 잡고는 왕량을 일러 천하의 양공(良工)이라 하고, 왕량을 자기 어자(御者)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조 간자가 왕량에게 해의 어자가 되어 달라고 말하자, 왕량이 듣지 않고 거절하여 말하기를 “내가 법대로 몰면 온종일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속여서 만나게 해 주면 하루아침에 열 마리를 잡으니,[吾爲之範我馳驅 終日不獲一 爲之詭遇 一朝而獲十] 나는 그런 소인(小人)과는 수레를 함께 탈 수 없다.”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孟子 滕文公下>
- 약야지금[躍冶之金] 펄펄 튀는 쇳물. 쓰이기를 조급하게 바람.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지금 위대한 대장장이가 쇠를 녹이는데, 그 쇠가 펄펄 뛰면서 ‘나는 반드시 막야검이 되겠다.’라고 한다면, 대장장이는 반드시 이를 상서롭지 못한 쇠로 여길 것이고, 지금 사람이 한 번 사람의 형체를 타고났다 해서 ‘나는 내세에도 꼭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고 한다면, 조화옹도 반드시 그를 상서롭지 못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今大冶鑄金, 金踊躍曰, 我且必爲鏌鎁, 大冶必以爲不祥之金. 今一犯人之形而曰, 人耳人耳, 夫造化者必以爲不祥之人.]”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전하여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유능하다고 여겨 쓰이기를 급급하게 여기는 데에 비유한다.
- 은회[隱晦] 숨어 없어짐. 자취를 감춤. 모습을 감춤. 은회하다. 자취·모습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다. 회삽하다.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 형범[型範] 형태를 만들어 내는 주물의 틀. 전형적인 모범. 틀. 형범(刑范). 만들려는 물건의 모양대로 속이 비어 있어 거기에 쇠붙이를 녹여 붓도록 되어 있는 틀인 거푸집이다. 흙으로 된 것을 형(型)이라 하고, 쇠로 된 것을 범(範)이라 한다.
- 지일[只一] 다만 한결같이. 다만 매사에. 그저.
- 우유[優遊] 하는 일 없이 편안하고 한가롭게 잘 지냄. 한가하고 느긋한 모습. 꾸물꾸물하는 모습. 결단력이 없는 모습. 우유(優柔).
- 부진[不振] 활발하게 움직여 떨치지 못함. 세력이 떨쳐 일어나지 못함. 어떤 일이나 그 일을 해 나가는 힘 등이 활발하지 못하고 달림. 활발하지 못하다. 부진하다. 왕성하지 않다.
- 우유부진[優遊不振] 우유부단(優柔不斷)하여 떨치지 못하는 상태.
- 우유부단[優柔不斷] 어물거리며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력이 없음. 어물어물하기만 하고 딱 잘라 결단을 하지 못함. 결단력이 부족한 것. 우유(優柔)는 우유(優遊)로 쓰기도 하는데, 너그럽고 온화한 성품, 이해심이 깊고 포용력이 있는 마음씨, 머뭇거리다 딱 잘라 결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이른다. 부단(不斷) 역시 끊어내지 못한다는 뜻으로 주체적으로 확실한 판단을 짓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서(漢書) 권9 원제기(元帝紀) 반고(班固)의 찬(贊)에 “나의 외조 형제가 원제의 시중(侍中)을 지낸 적이 있다. 그가 내게 알려주기를 원제는 다재다능하다고 하였다. 역사와 서법에 조예가 깊고 금슬(琴瑟: 거문고와 비파)을 탈 줄 알고 피리를 불 줄 알며 악보에 따라 어울리는 가사를 잘 짓는데 장단이 분명하고 매우 오묘하다고 하였다. 원제는 어렸을 때부터 유학(儒學)을 숭상하였고, 제위에 오른 뒤로는 유생들을 선발하여 정사에 등용하여 공우, 설광덕, 위현, 광형 등의 유생들이 연이어 재상이 되었다. 그러나 원제는 문의(文義)에 얽매였고 유순하고 결단력이 없어 선대 왕인 선제가 중흥한 업적이 마침내 쇠해졌다. 하지만 넓은 아량으로 신하들을 대하고 정중하고 겸손하였으며 호령하기를 온화하게 하였으니 고대 어진 황제들과 같은 유풍을 남겼다.[臣外祖兄弟爲元帝侍中, 語臣曰: ‘元帝多材藝, 善史書, 鼓琴瑟, 吹洞簫, 自度曲, 被歌聲, 分節度, 窮極幼眇.’ 少而好儒, 及即位, 征用儒生, 委之以政薛韋匡迭爲宰相. 而上牽制文義, 優遊不斷, 孝宣之業衰焉. 然寬弘盡下, 出於恭儉, 號令溫雅, 有古之風烈.]”라고 한 데서 보인다.
- 무개[無個] 한 개도 없음. 아무것도 없음.
- 진보[進步] 정도나 수준이 차츰 향상하여 감. 더욱 발달함. 차차 더 좋게 되어 나아감.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
- 백사[白沙] 명(明)나라 중기의 심학자인 진헌장(陳獻章)의 호이다. 자는 공보(公甫), 별호는 석재(石齋), 시호는 문공(文恭)이다. 백사(白沙)에서 살았기 때문에 백사선생(白沙先生)이라고도 한다. 그의 학풍은 정좌(靜坐)하여 마음을 깨끗이 함으로써 이치(理致)를 직관(直觀)하는 것으로, 주자(朱子)의 학풍과는 대치되었다. 그의 제자는 감천(甘泉) 담약수(湛若水), 의려(醫閭) 하흠(賀欽) 등인데, 담약수는 “수처(隨處)에서 천리를 체인하라.”고 하여 왕양명과 더불어 천하의 강단(講壇)을 주름잡던 인물이었고, 하흠은 요동(遼東)에서 역시 심학의 중심이 되었다. 그의 학문은 가정(嘉靖) 12년에 간행된 백사자집(白沙子集) 9권 10책과 황종휘의 명유학안(明儒學案) 권5 백사학안(白沙學案)에 요약되었다.
- 백사[白沙] 명나라의 유학자인 진헌장(陳獻章)의 호이다. 또 다른 호는 석재(石齋) 또는 벽옥노인(碧玉老人)이며, 자는 공보(公甫)이다. 왕수인(王守仁)과 함께 명나라를 대표하는 유학자로 병칭되고 있으며, 강문학파(江門學派)의 원조이다. 유교 경전의 해석에만 몰두하는 당대의 주자학에 반발하고, 육구연(陸九淵)의 심학을 계승하여 실천성을 중시했으며, 정좌(靜坐)에 의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천리(天理)를 체인(體認)할 것을 주장했다. 백사집(白沙集)이 전한다. <明史 卷283 儒林列傳 陳獻章>
- 백사[白沙] 진헌장(陳獻章)의 호이며 광동 신회(新會)의 백사리 사람인데, 정주학자 오여필(吳與弼)에게 수학하다가 귀향하여 정좌(靜坐) 끝에 오히려 육구연(陸九淵)의 심이 곧 이[心卽理]라는 데 이르고, 다시 마음 안에서 천리를 체인할 것을 깨달았으며, “육경(六經)은 한낱 조박(糟粕)일 뿐이라.”고까지 하여 심학을 정립하였다. 정좌법(靜坐法)을 중시하여 일세를 풍미하며 저술은 하지 않고 학자들을 가르치면서도 다만 마음을 맑게 하고 단정히 앉아있으라고만 하여 활맹자(活孟子)라는 칭호를 얻기도 하였다. 신종(神宗) 때 공묘(孔廟)에 종사(從祀)되었다. <明史 卷283> <明儒學案 卷5>
- 미족[未足] 아직 넉넉하지 못함.
- 오우[吾憂] 나의 걱정이다.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덕을 닦지 않는 것과 학문을 강마하지 않는 것, 의를 듣고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과 불선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걱정거리이다.[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라고 한 데서 보인다.
- 확론[確論] 명확(明確)한 의논(議論). 합당한 논조. 올바른 언론. 지당한 언론. 확설(確說).
【譯文】 憂勞興國, 逸豫亡身 : 病未足羞, 無病吾憂.
顛翻車駕的野馬可以練就它疾馳效力, 踴躍冶煉的金屬終究歸複於模具規範 ; 只要一時優柔寡斷遊手好閑不加振作, 就是終了一生也不會有一個前進步伐. 白沙先生說 : “做人有多少毛病未必足夠羞恥, 一生沒有一點毛病才是我的憂患.” 眞是確切的言論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