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惟丁卯[세유정묘] 해는 정묘년
律中無射[율중무역] 음력 구월
天寒夜長[천한야장] 날씨는 차고 어두운 밤은 긴데
風氣蕭索[풍기소삭] 쓸쓸하고 삭막한 바람만 불어오네
鴻雁于往[홍안우왕] 기러기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草木黃落[초목황락] 초목은 누렇게 시들어 떨어지네
陶子將辭[도자장사] 나는
逆旅之館[역려지관] 나그네길 잠시 머물던 곳을 떠나
永歸於本宅[영귀어본택] 영원히 본 집으로 돌아간다네
故人悽其相悲[고인처기상비] 정든 사람들은 애절히 슬퍼하며
同祖行於今夕[동조행어금석] 떠나는 나를 위해 제사 지내네
羞以嘉蔬[수이가소] 제사상에 음식을 잘 차려 놓고
薦以淸酌[천이청작] 맑은 술을 따라 올리네
候顔已冥[후안이명] 그러나 나의 얼굴 이미 어둡고
聆音愈漠[영음유막] 말을 들으려 해도 침묵만 더할 뿐
嗚呼哀哉[오호애재] 아! 슬프다
茫茫大塊[망망대괴] 넓고 넓은 대지와
悠悠高旻[유유고민] 더없이 높은 하늘
是生萬物[시생만물] 거기에서 세상 만물이 나오고
余得爲人[여득위인] 나는 그 중에도 사람으로 태어나
自余爲人[자여위인] 사람으로 내내 살아오는 동안
逢運之貧[봉운지빈] 가난한 운을 만나게 되어
簞瓢屢罄[단표누경] 그릇이며 곳간은 늘 비어 있고
絺綌冬陳[치격동진] 갈포를 걸치고 겨울을 지냈으나
含歡谷汲[함환곡급] 계곡 물을 마시며 기뻐하고
行歌負薪[행가부신] 나뭇짐을 지고 가며 노래했네
翳翳柴門[예예시문] 늘 사립문을 닫아걸고 지내기를
事我宵晨[사아소신] 밤이나 낮이나 일삼았네
春秋代謝[춘추대사] 봄과 가을이 바뀌도록
有務中園[유무중원] 부지런히 들에 나가 일하였네
載耘載耔[재운재자] 때로는 김을 매고 때로는 북돋우며
迺育迺繁[내육내번] 그렇게 키우고 늘려나갔네
欣以素牘[흔이소독] 기쁜 마음으로 때론 글을 읽고
和以七絃[화이칠현] 또한 때로는 거문고를 즐겼네
冬曝其日[동포기일] 겨울에는 따스한 햇볕을 쬐고
夏濯其泉[하탁기천] 여름에는 찬 샘물에 몸을 씻었네
勤靡餘勞[근미여로] 온 힘을 기울여 고생스레 일을 해도
心有常閒[심유상한] 마음은 늘 한가로웠네
樂天委分[낙천위분] 즐거운 마음으로 분수에 맞게
以至百年[이지백년] 그렇게 지난 평생을 살았네
惟此百年[유차백년] 이러한 백년도 못되는 세월을
夫人愛之[부인애지] 사람들은 애지중지하며
懼彼無成[구피무성] 이룬 것이 없음을 염려하고
愒日惜時[게일석시] 하루라도 더 살려고 시간을 아끼네
存爲世珍[존위세진] 살아서는 세상에 귀히 되길 바라고
沒亦見思[몰역견사] 죽어서도 역시 기억되길 바라네
嗟我獨邁[차아독매] 그러나 나만 홀로 고매하게
曾是異茲[증시이자] 일찍이 남들과는 다르게 살았네
寵非己榮[총비기영] 총애를 영광으로 여기지 않고
涅豈吾緇[날기오치] 속세의 개흙에 물들지 않았네
捽兀窮廬[졸올궁려] 나를 바로잡고 허름한 오두막에
酣飮賦詩[감음부시] 술을 즐기고 시를 지었네
識運知命[식운지명] 운명을 스스로 알고 있으니
余今斯化[여금사화] 이제 나는 변화를 따르려네
可以無恨[가이무한] 이제 더 이상 여한이 없으니
壽涉百齡[수섭백령] 백살 가까이 살만큼 살았네
身慕肥遁[신모비돈] 여유로운 은둔을 좋아하여
從老得終[종로득종] 살만큼 살고 늙어서 죽으니
奚所復慕[해소복모] 어찌 다시 바랄 것이 있으리
寒署逾邁[한서유매] 추위와 더위 지나가고
亡旣異存[망기이존] 죽음은 이미 삶과 다르네
外姻晨來[외인신래] 바깥 친척들은 새벽에 오고
良友宵奔[양우소분] 친한 친구들은 밤에 달려오네
葬之中野[장지중야] 들판 한가운데 장사지내어
以安其魂[이안기혼] 넋을 편안하게 하여주네
窅窅我行[요요아행] 깊고도 먼 나의 갈길
蕭蕭墓門[소소묘문] 무덤 속은 너무도 적막하고 쓸쓸하네
奢恥宋臣[사치송신] 송나라 한퇴의 사치는 부끄럽고
儉笑王孫[검소왕손] 한나라 왕양손 검소함은 우습네
廓兮已滅[곽혜이멸] 텅 빈 묘지에서 사라질 것이니
慨焉已遐[개언이하] 멀리 떠나감을 어찌 탄식하리
不封不樹[불봉불수] 내 무덤엔 봉분도 나무도 없이
日月遂過[일월수과] 세월과 더불어 사라지리라
匪貴前譽[비귀전예] 살아서 명예를 귀히 아니 여겼으니
孰重後歌[숙중후가] 죽은 후에 누가 칭송하며 중시하리
人生寔難[인생식난] 참으로 어렵게 살아온 인생
死如之何[사여지하] 죽는다 한들 또한 어떠하리
嗚呼哀哉[오호애재] 아! 서글프고 애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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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祭文자제문 / 陶淵明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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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射무역 : 십이율(十二律)의 열한째 음. 육률(六律)의 하나로 방위는 술(戌), 절후는 음력 9월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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