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군할 때 위장하라 하면
아카시아 상수리 가지 꺾어
탄띠와 군장에 꽂고 철모엔
보라색 도라지꽃 한 송이 피웠지.
‘난 언제든 꽃상여 탈 준비가 돼 있능겨
소나기에 나오는 가시나처럼
소설적으로 죽고 싶은겨‘
언제나 굳은 일 도맡아 하던 윤 병장
갈대 무성한 여름 수색 길에 본
앵돌아진 계집애 같은 도라지꽃
꺾으려 한 발 디밀며 허리 숙인 순간
몸뚱어리 산산이 찢기며
비무장 지대 맑은 하늘로 솟았다.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라’
팻말 옆에 떼구르르 굴러와
입 벌리고 선 철모 속으로 찢겨진
도라지꽃 한 송이
팽그르르 돌며 떨어졌다.
–
<꽃과 제복 – 도라지꽃 / 박윤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