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세상을 살아감에
줄이면 줄인 만큼 자유로워진다.
사귐을 줄이면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고
말을 줄이면 허물이 적어지며
생각을 줄이면 정신이 소모되지 않고
총명함을 줄이면 본성을 온전히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날로 줄이려 하지 않고 날로 더하려 하니
참으로 속박 받는 삶이 아닐 수 없다.
人生減省一分, 便超脫一分.
인생감생일분, 변초탈일분.
如交遊減便免紛擾, 言語減便寡愆尤,
여교류감변면분요, 언어감변과건우,
思慮減則精神不耗, 聰明減則混沌可完.
사려감즉정신불모, 총명감즉혼돈가완.
彼不求日減而求日增者, 眞桎梏此生哉!
피불구일감이구일증자, 진질곡차생재!
<菜根譚채근담/明刻本명각본(萬曆本만력본)/後集후집>
- 감생[減省] 덜어서 줄임. 비용을 절감함. 경비를 덜어서 줄임. 비용을 감하는 것.
- 초탈[超脫] 세속적인 것이나 일반적인 한계를 벗어남. 성품이 고상하여 세상일에 관여(關與)하지 아니함. 세속(世俗)을 벗어남. 벗어나서 뛰어넘다. 얽매이지 않다. 초월하다. 자유롭다.
- 분요[紛擾]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움. 분잡하고 소요스러움. 분쟁을 일으켜 시끄러운 것. 분란(紛亂). 혼란. 동란. 헝클어져 얽히는 것. 옥신각신하는 것. 참고로, 후한서(後漢書) 선비전(鮮卑前)에 “동관에 동란이 발생하여 길이 막혔다.[東關紛擾, 道路不通.]”라고 하였다.
- 건우[愆尤] 그릇되게 저지른 실수. 허물을 탓함. 과실. 죄과. 허물. 잘못. 실수. 참고로, 이백(李白)의 시 고풍(古風)에 “공을 이룬 뒤 몸 물러나지 않음이, 예부터 허물이 많이 되었더라.[功成身不退, 自古多愆尤.]”라고 하였다.
- 총명[聰明] 영리하고 기억력이 좋으며 재주가 있음. 슬기롭고 도리(道理)에 밝음.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이 있음. 눈과 귀가 밝아지는 것. 눈과 귀가 예민(銳敏)함. 영리하다. 똑똑하다. 영민(靈敏)하다. 송(宋)나라 주희(朱熹)의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 “만일에 총명과 지혜가 있어서 그 본성을 지극하게 하고 있는 자가 그 사이에서 나오면, 천(天)은 반드시 그를 명하여 억조창생의 임금으로 삼아서 백성을 다스려 교화하게 해서 그 본성을 회복하게 한다.[一有聰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于其間 則天必命之以为億兆之君師 使之治而教之 以復其性]”라고 하였고,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간사한 소리와 음란한 여색은 총명을 흐리게 한다.[姦聲亂色, 不留聰明.]”라고 했는데, 공영달(孔穎達)의 소(疏)에 “간사한 소리와 음란한 여색이 귀와 눈에 머물지 않게 하지 않으면 귀와 눈이 밝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謂不使姦聲亂色留停於耳目, 令耳目不聰明也.]”라고 하였다.
- 혼돈[混沌] 하늘과 땅이 아직 나뉘지 않은 원형 그대로 있는 상태. 천지개벽 초에 아직 만물이 확실히 구별되지 않은 상태. 질박한 상태. 자연스러운 상태. 모호하다. 불분명하다. 무지몽매하다. 온갖 사물이나 정신적 가치가 마구 뒤섞이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 또는 그러한 상태. 천지(天地)가 개벽(開闢)하기 전에 천지의 원기(元氣)가 아직 나누어 지지 않고 한데 엉겨 있는 모호한 상태를 말한 것으로, 전하여 전혀 거짓이 없는 순박(淳朴)한 세상을 의미한다.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에 “남해의 제왕을 숙(儵)이라 하고, 북해의 제왕을 홀(忽)이라 하고, 중앙의 제왕을 혼돈(混沌)이라 하였다.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남에, 혼돈이 이들을 매우 잘 대해주자 숙과 홀은 혼돈의 덕에 보답할 것을 의논하여 ‘사람들은 7개의 구멍을 갖고 있어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이 혼돈에게만 없으니 마땅히 구멍을 뚫어줍시다.’라고 하고는, 하루에 한 개의 구멍을 뚫어주었는데 7일 만에 혼돈은 죽고 말았다.[南海之帝爲儵, 北海之帝爲忽, 中央之帝爲混沌. 儵與忽時與相遇於混沌之地, 混沌待之甚善. 儵與忽謀報混沌之德曰: 人皆有七竅, 以視聽食息, 此獨無有, 當試鑿之. 日鑿一竅, 七日而混沌死.]”라고 하였다. 혼돈(渾沌).
- 혼돈[混沌] 혼돈(混沌)은 예전에 물건을 담던 그릇 이름으로, 소나 양의 머리 부분을 잘라 내고 뱃속의 고기를 모두 파내어서 만든 부대 모양의 가죽 주머니를 말한다.
- 질곡[桎梏] 차꼬와 수갑. 속박(束縛). 질(桎)은 발에 채우는 족쇄이고 곡(梏)은 손에 채우는 수갑이다. 몹시 속박(束縛)하여 자유를 가질 수 없는 고통의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른다. 주역(周易) 몽괘(蒙卦) 초6(初六)에 “사람을 형벌하여 몽매한 질곡을 벗겨줌이 이롭다.[利用刑人 用說桎梏]”라는 내용이 보인다. 항쇄(項鎖). 족쇄(足鎖).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모든 것이 천명 아닌 게 없으나, 순하게 정명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명을 아는 자는 담장 아래에 서지 않는다. 도리를 다하고 죽는 자는 정명이고, 질곡으로 죽는 자는 정명이 아니다.[莫非命也, 順受其正. 是故知命者不立乎巖牆之下. 盡其道而死者正命也, 桎梏死者非正命也.]”라고 보이는데, 주자(朱子)의 집주(集註)에 “질곡은 죄인을 구속하는 것이다. 죄를 범하여 죽는 것은 위험한 담장 아래에 서 있다가 압사하는 것과 같으니, 모두 인간이 취한 것이요 하늘이 한 것이 아님을 말씀한 것이다.[桎梏所以拘罪人者. 言犯罪而死, 與立巖墻之下者同, 皆人所取, 非天所爲也.]”라고 하였다.
【譯文】 減繁增靜, 安樂之基.
人的一生能減少節省一些就超凡脫俗一些. 比如, 交際應酬減少就能避免紛亂騷擾, 言辭話語減少就能減少過失罪咎, 思索考慮減少就不必耗費精力神志, 聰慧明了減少就可以完好純眞本性. 那些不去尋求逐日減少反而追求每日增加的人, 就眞正束縛壓制了這一生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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