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문득, 아버지의 시계가 생각났다.
서재 서랍에 두었었는데 어디 가지 않았을까?
퇴근하고 돌아와 찾아보니 책상도 서랍도 문득 낯설다.
기억을 뒤지고 있으려니 아내가 장롱에서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그 나무상자 안에 시계와 라이터가 나란히 누워있다.
벌써 책상이 세 번 바뀌었다는데 내 기억은 도대체 어딜 갔다 온 거냐.
둘째 형님이 외국에 나가 일하고 들어오면서 사다 드린 것이다.
차고 움직이면 저절로 태엽이 감기는 시계라며 무척 편리해 하셨다.
나무 할 때나 깔 벨 때나 논밭에서 일 할 때나 자주 시계를 보셨다.
자주적인 농부이니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었고
산골에 외따로 사니 시간 탈 약속도 드물었고
산에 걸리는 해로 정확히 시간을 아시던 아버지는
자주 시계를 보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간직하자 라이터와 함께 가져왔는데
스무예닐곱 세월이 가고, 아버지도 시계도 라이터도 잊혀졌다.
몇 번 흔드니 시계바늘이 다시 움직인다.
라이터도 기름만 넣으면 쓸 수 있겠다.
“술은 먹어도 담배는 피지 마라.”
스마트폰이 늘 손 안에 있으니 시계를 찰 일이 없고
담배를 끊었으니 라이터 쓸 일도 없는 것이 나의 세월이다.
잘 닦아 모셔놓고 이따금 꺼내 흔들어 시계바늘이나 움직여 줘야겠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의 또 다른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째깍째깍 내 안에서 아버지의 시계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