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세움에 있어
한 걸음 더 높이 세우지 않으면
먼지 속에서 옷을 털고
흙탕물에 발을 씻는 것과 같으니
어찌 초탈할 수 있겠는가.
세상을 살아감에
한 걸음 물러나 처신하지 않는다면
부나방이 촛불에 날아들고
숫양이 울타리에 뿔을 박는 것과 같으니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立身不高一步立, 如塵裏振衣, 泥中濯足, 如何超達?
입신불고일보립, 여진리진의, 이중탁족, 여하초달?
處世不退一步處, 如飛蛾投燭, 羝羊觸藩, 如何安樂?
처세불퇴일보처, 여비아투촉, 저양촉번, 여하안락?
<채근담菜根譚/명각본明刻本(만력본萬曆本)/전집前集>
- 입신[立身] 세상에 나아가 뜻을 펼 수 있는 인격과 지식을 갖춤. 자신의 인격을 확립함. 뜻을 세움. 명예나 부, 확고한 지위 등을 획득하여 사회적으로 출세함. 사회에 나아가서 자기의 기반을 확립하여 출세함. 입신양명(立身揚名). 입신출세(立身出世).
- 입신양명[立身揚名] 몸을 세우고 이름을 날림. 수양으로 자신의 몸을 바르게 세우고, 출세(出世)하여 자기의 이름이 세상에 드날림. 효경(孝經)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신체의 머리털과 살은 모두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 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다. 대저 효도는 처음에는 어버이를 섬기고 중간에는 군주를 섬기고 마지막에는 몸을 세우는 것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毀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 夫孝 始於事親 中於事君 終於立身]”라고 하였다.
- 진의[振衣] 진의(振衣)는 벼슬길에 나아가기 위하여 준비함을 뜻하는바, 후한서(後漢書) 권63 이고열전(李固列傳)에 “이런 까닭에 암혈(巖穴)에 있는 은자(隱者)와 지혜와 경륜을 갖춘 선비가 갓과 옷깃의 먼지를 털고 관직에 나아가 쓰이고 싶어 하는 것이다.[是以岩穴幽人, 智術之士, 彈冠振衣, 樂欲爲用.]”라고 하였다.
- 진의[振衣] 옷의 먼지를 털음, 속태를 벗고 뜻을 고상하게 가진다는 뜻이다. 좌사(左思)의 영사시(詠史詩)에 “천 길 높은 산에서 옷 먼지 털고, 만리 되는 강에서 발을 씻는다.[振衣千仞岡, 濯足萬里流.]”라고 하였고,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자는 반드시 옷의 먼지를 털어 입는다.[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는 말이 나온다. 또, 백거이(白居易)의 시 우작(偶作)에 “해 뜨면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고, 옷매무새 바로 잡고 도량으로 들어가네.[日出起盥櫛, 振衣入道場.]”라고 하였다.
- 진의탁족[振衣濯足] 속세(俗世)를 초월함을 의미한다. 진(晉)나라 좌사(左思)의 영사8수(詠史八首) 가운데 가운데 제5수에 “베옷을 걸쳐 입고 도성 나와서, 당당한 걸음으로 허유 뒤따라. 천길 높은 산봉에 옷 먼지 털고, 만리 뻗은 강물에 발을 씻노라.[被褐出閶闔, 高步追許由. 振衣千仞岡, 濯足萬里流.]”라고 하였다. <文選 卷21>
- 탁족[濯足] 발을 닦음. 맹자(孟子) 이루 상(離婁上)에 “동자가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나의 갓끈을 빨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나의 발을 씻겠다.[有孺子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소자들아 저 노래를 들어 보라. 물이 맑으면 갓끈을 빨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는 물이 스스로 취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孔子曰 小子 聽之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라고 하였다.
- 초달[超達] 보통을 넘어서 그 방면에 통달함. 초탈광달(超脫曠達).
- 초탈[超脫] 벗어나서 뛰어넘다. 세속적인 것이나 일반적인 한계를 벗어남. 성품이 고상하여 세상일에 관여(關與)하지 아니함. 세속(世俗)을 벗어남.
- 광달[曠達] 마음이 넓고 활달함. 도량이 넓고 크다.
- 처세[處世] 사람들과 어울려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 세상사는 일. 이 세상(世上)에서 살아감.
- 비아부화[飛蛾赴火] 나방이 날아 불로 달려듬. 스스로 위험한 곳에 뛰어들어 화를 자초함. 불을 향해 날아드는 나방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자멸의 길로 들어가거나 재앙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남조(南朝)의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문장력이 뛰어난 죄민상서(左民尙書) 도개(到漑)를 등용하였다. 무제는 그의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였으며, 무제의 총애는 도개의 손자인 도신(到藎)에 까지 미쳤다. 도신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며, 모든 종류의 문장에 능했다. 어느 날 도개는 손자 도신을 데리고 무제를 수행하여 북고루(北顧樓)에 올라 경치를 구경하게 되었다. 무제는 흥이 일자, 도신에게 시 한 수를 지어보라고 하였다. 도신은 즉시 시를 한 수 지어 무제에게 올렸다. 도신의 시를 보고, 그의 재능에 감탄한 무제가 도개에게 웃으며 “그대의 손자는 과연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소. 혹시 그대의 문장이 손자의 손에서 나온 것은 아니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친 무제는 연주(連珠)라는 시를 지어 도개에게 하사하였는데, 그 시에 “벼루는 먹을 갈아 문장을 짓고, 붓은 털을 날려 편지를 쓰니, 마치 나는 나방이가 불로 달려 들어가는 것 같은데, 어찌 스스로 몸을 태우는 것을 마다하겠는가.[硯磨墨以騰文, 筆飛毫以書信, 如飛蛾之赴火, 豈焚身之可吝.]”라고 하였다. <양서梁書 도개전到漑傳> 비아투화(飛蛾投火). 야아부화(夜蛾赴火).
- 저양촉번[羝羊觸藩]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곤경에 빠졌음을 뜻한다. 수컷 양이 울타리를 치받다가 뿔이 걸려 꼼짝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으로, 역량이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밀고 나가다가 빼도 박도 못하는 난처한 처지에 빠져버림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주역(周易) 대장괘(大壯卦) 상육(上六)에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뿔이 울타리에 걸리니 물러나지도 나아가지도 못하여 이로운 바가 없다.[羝羊觸藩 不能進 不能退 無攸益]”라고 하였고, 주역(周易) 대장괘(大壯卦) 구삼(九三)에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그 뿔을 다치게 한다.[羝羊觸藩 羸其角]”라는 말이 나온다.
- 저양촉번[羝羊觸藩] 주역(周易) 뇌천대장괘(雷天大莊卦)의 내용으로 저양(羝羊)은 양의 수놈을 이른다. 강장(剛壯)해서 무엇이든지 뿔로 받기를 좋아하지만 울타리에 뿔이 박혀서 나아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리를 분간하지 못하고 주책없이 날뛰어 도리어 진퇴양난(進退兩亂)에 빠져 실패한다는 것에 비유한다.
【譯文】 立身要高, 處世須讓.
立身處世不能高一步立足, 猶如在灰塵裏振抖衣服, 在泥水中洗濯雙腳, 怎麼能超脫曠達? 處理世事不能退一步處置, 就像飛蛾撲火自取滅亡, 公羊頂藩進退兩難, 怎麼能安寧快樂?
立身處世假如不能站得高看得遠一些, 就好像在飛塵裏打掃衣服, 在泥水裏洗濯雙腳, 又如何能超凡絕俗出人頭地呢? 處理事物假如不做留一些餘 地的打算, 就好比飛蛾撲火, 公羊去頂撞籬笆被卡住角, 哪裏能夠使自己的身心擺脫困境而感到愉快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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