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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생기복[賈生忌鵩]~가생장태식[賈生長太息]~가생통한[賈生痛漢]


가생가도[賈生賈島]  가생(賈生)은 한(漢) 나라 가의(賈誼)를 말하고 가도(賈島)는 당(唐) 나라 때 시인(詩人)인데, 처음에 중이 되었다가 뒤에 한유(韓愈)의 가르침을 받아 다시 환속(還俗)하였다. <唐書 卷一百七十六 賈島傳>

가생기복[賈生忌鵩]  가생은 전한(前漢) 때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그는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어 마음이 울적하고 지세(地勢)가 비습하여 건강도 나빴는데 상서롭지 못하다는 올빼미마저 날아들므로 복조부(鵩鳥賦)를 지어 자위하였다. <漢書 賈誼列傳>

가생류체[賈生流涕]  가생은 한 문제(漢文帝) 때의 문신 가의(賈誼)를 가리키는데, 그가 시국광구책(時局匡救策)인 치안책(治安策)을 문제에게 올려 잘못된 정치를 격렬히 비판했던바, 치안책 첫머리의 대략에 “신은 삼가 생각하건대, 지금의 사세가 통곡할 만한 일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이 두 가지요, 길이 한숨을 쉴 만한 일이 여섯 가지입니다.[臣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고 하였다. <漢書 卷48 賈誼傳>

가생비고[賈生非辜]  가생(賈生)은 한(漢)나라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그는 불과 스무 살의 어린 나이로 문제(文帝)의 깊은 신임을 얻어 태중대부(太中大夫)로 발탁되어 복색(服色), 제도(制度), 관명(官名) 등의 대대적인 개혁을 주장하다가 당시 대신이었던 주발(周勃), 관영(灌嬰) 등의 참소를 입었다. 그리하여 문제의 신임을 잃고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어 서른셋의 젊은 나이로 죽었다. <漢書 卷48 賈誼傳>

가생수체[賈生垂涕]  가생(賈生)은 한 문제(漢文帝) 때의 문신 가의(賈誼)의 별칭이고,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곧 그가 일찍이 시국광구책(時局匡救策)인 치안책(治安策)을 문제에게 올렸던바, 그 첫머리에 “신은 그윽이 생각건대, 지금의 사세가 통곡할 만한 일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일이 두 가지요, 길이 한숨을 쉴 만한 일이 여섯 가지입니다.[臣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48 賈誼傳>

가생작부강관비[賈生作賦强寬譬]  가생은 전한(前漢)의 가의(賈誼)를 말하는데, 그가 장사왕 부(長沙王傅)로 좌천되었을 때, 불길한 새로서 올빼미 같이 생긴 복조(鵩鳥)가 자신의 방에 날아 들어와 앉자, 그는 이를 불길한 징조라 하여 자신이 곧 죽을 것으로 여기고, 이에 복조부(鵩鳥賦)를 지어서 자신을 위로했던 것을 말한다. <漢書 卷四十八>

가생장태식[賈生長太息]  가생은 한(漢) 나라 때의 가의(賈誼)를 말하고, 장태식은 소리를 길게 내는 한숨을 이른 것으로, 가의가 일찍이 한 문제(漢文帝)에게 올린 글에서 국가의 사세(事勢)를 들어 “통곡(痛哭)할 만한 것이 한 가지요, 유체(流涕)할 말한 것이 두 가지요, 장태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 …… .”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48>

가생지초[賈生之楚]  한(漢) 나라 가의(賈誼)가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로 좌천되어 남초(南楚)에 갔다.

가생지통[賈生之痛]  한 문제(漢文帝) 때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 가의(賈誼)가 흉노의 변경 침입 및 제후의 발호로 인한 국가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상소를 올려 시무책(時務策)을 건의하였다. 그 상소에서 가의는 시사의 문제점을 통곡할 만한 일 하나, 눈물 흘릴 만한 일 둘, 길이 탄식할 만한 일 여섯으로 나누어 지적하였다. <漢書 卷48 賈誼傳>

가생척축 복소선실[賈生斥逐 復召宣室]  가생(賈生)은 가의(賈誼)로, 서한(西漢)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이다. 문재(文才)가 출중하여 20여 세 때 문제(文帝)가 불러 박사(博士)로 삼았고 2, 3년 사이에 승진을 거듭하여 태중대부(太中大夫)에까지 승진하였다. 자주 글을 올려 시정(時政)의 폐단을 건의하다가 대신(大臣) 주발(周勃)과 관영(灌嬰) 등의 참소로 장사왕태부(長沙王太傅)로 폄직되었다. 그로부터 1년 뒤에 문제(文帝)가 그를 장안(長安)으로 불러들여 선실(宣室)에서 단둘이 만나 밤이 깊도록 귀신(鬼神)의 이치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선실(宣室)은 미앙궁(未央宮)에 딸린 궁전으로, 황제가 재계하는 개인적인 처소이다. <漢書 권48 賈誼列傳>

가생통한[賈生痛漢]  한 문제(漢文帝) 때 흉노(匈奴)의 세력이 강성하여 국경을 침범하고, 나라의 제도가 체제가 잡히지 않아 엉성하고, 회남왕(淮南王)과 제북왕(濟北王)이 반역을 꾀하다가 사형을 당하는 등 나라의 안팎이 매우 어지럽자, 양회왕(梁懷王) 태부(太傅)로 있던 가의(賈誼)가 이를 개탄하여 올린 상소에 “신은 삼가 사세를 생각건대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이고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이고 길게 한숨을 쉴 만한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 하며, 조목별로 그 내용을 진술하였다. <漢書 卷四十八 賈誼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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