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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軻書]~가서백란[佳婿伯鸞]~가서저만금[家書抵萬金]


가서[軻書]  가서는 맹자(孟子)를 말한다.

가서[哥舒]  복성(複姓)이다. 당(唐)나라 때 돌기시(突騎施)에 가서부(哥舒部)가 있어 대대로 안서(安西)에 살았고, 또한 부락(部落)의 이름을 성씨(姓氏)로 삼았다.

가서[嘉瑞]  상서(祥瑞), 길조(吉兆).

가서[嫁鼠]  쥐의 출가.

가서만금[家書萬金]  여행 중에 가인으로부터 서신을 받으면 그 기쁨이 만금을 얻은 것 같다는 말이다.

가서백란[佳婿伯鸞]  후한서(後漢書) 권83 양홍열전(梁鴻列傳)에 “양홍은 자가 백란(伯鸞)이다. 권세가에서 양홍의 고절(高節)을 사모하여 그에게 딸을 시집보내고자 하는 자가 많았으나 양홍은 모두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같은 고을 맹씨(孟氏) 집에 딸이 있었는데, 양홍이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함께 패릉산(霸陵山)에 들어가 몸소 농사를 짓고 베를 짜고 시서(詩書)를 읊고 금(琴)을 타면서 살았다.” 하였다. 이 내용은 고금사문유취(古今事文類聚), 연감유함(淵鑑類函), 패문운부(佩文韻府) 등에 실려 전하며, 조선 허균(許筠)의 한정록(閑情錄) 은둔(隱遁)에도 실려 있다.

가서수동관[哥舒守潼關]  가서한(哥舒翰)은 당(唐)나라에 귀화한 돌궐(突厥) 출신의 무장(武將)으로 토번(吐蕃)을 토벌하여 서평군왕(西平郡王)으로 봉해지는 등 현종(玄宗)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천보(天寶) 14년에 안록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하서절도사(河西節度使)로 있던 가서한은 황태자전봉병마원수(皇太子前鋒兵馬元帥)에 임명되어 20만의 병력으로 동관(潼關)을 지키고 있었는데, 안록산의 기세가 대단하자, 동관을 굳게 지키며 적이 약해지기를 기다려 출격하려 하였다. 그러나 현종이 기어이 싸우도록 명령을 내리자 어쩔 수 없이 회전(會戰)하였다가 패하여 동관이 함락되었고 현종은 할 수 없이 촉(蜀)으로 파천하였다. <舊唐書 권10 肅宗本紀>

가서저만금[家書抵萬金]  집에서 편지가 아주 드물게 와 한 장의 값어치가 만금이나 된다는 뜻으로, 두보(杜甫)의 춘망(春望) 시에 이르기를 “봉화는 석 달 동안 계속 오르고, 집에서 온 편지는 만금 값이네.[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라고 하였다.

가서한[哥舒翰]  당(唐) 현종(玄宗) 때의 장군이다. 돌궐족(突厥族) 가서부(哥舒府)의 후예인데, 대대로 서안(西安)에 거주하였다. 어려서 춘추(春秋)를 읽어 대의(大義)를 알았으며, 출전(出戰)할 때마다 창 하나를 들고 모두 이겼다. 하서(河西)·농우(隴右) 등의 절도사에 제수되었고, 토번(吐蕃)을 격파한 공훈으로 서평군왕(西平郡王)에 봉해졌으며, 병으로 인해 경사에 머물다가 안녹산의 난이 일어났을 때 출전하였으나 패하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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