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佳城] 가성은 묘소를 일컫는 말이다.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명신인 등공(滕公) 하후영(夏侯嬰)이 하루는 말을 타고 동도문(東都門)에 이르렀는데, 말이 가지 않고 발로 땅을 차기에 그곳을 파 보니 석곽(石槨) 하나가 나왔는데, 여기에 “답답하던 가성이 3천 년 만에 태양을 보았네. 아, 등공이 이곳에 머물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居此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이에 등공이 유언하여 자신이 죽은 뒤에 이곳에 장사지내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西京雜記 卷4>
가성[佳城] 무덤을 뜻한다. 한 고조(漢高祖)의 명신인 하후영(夏侯嬰)은 봉호가 등공(滕公)인데, 등공이 일찍이 말을 타고 동도문(東都門)에 이르렀을 때 말이 가지 않고 발로 땅을 허비적거리므로, 그곳을 파 본 결과 석곽(石槨) 하나가 나왔다. 이를 깨끗이 씻어서 보니 “답답하던 가성이 삼천 년 만에 태양을 보았도다. 아, 등공이 이곳에 거처하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居此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이에 등공이 죽은 뒤에 유명(遺命)에 의해 그곳에 장사 지냈다. <西京雜記 卷4>
가성[佳城] 아름다운 성(城). 무덤의 견고함을 성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한(漢)나라 등공(滕公)이 말을 타고 가다가 동도문(東都門) 밖에 이르자 말이 울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고 발로 오랫동안 땅을 굴렀다. 사졸(士卒)을 시켜 땅을 파보니 깊이 석 자쯤 들어간 곳에 석곽(石槨)이 있고, 거기에 “가성(佳城)이 울울하니, 삼천 년 만에야 해를 보도다. 아아! 등공이여, 이 실에 거처하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 居此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한다. <西京雜記 卷4>
가성[家聲] 여러 대 전해 오는 그 집안의 명성. 집안의 명예.
가성견일[佳城見日] 가성은 묘소를 일컫는 말로, 해를 본다는 것은 다시 무덤을 열어 천장한다는 뜻이다. 한(漢)나라 고조(高祖)의 명신인 등공(滕公) 하후영(夏侯嬰)이 하루는 말을 타고 동도문(東都門)에 이르렀는데, 말이 가지 않고 발로 땅을 차기에 그곳을 파 보니 석곽(石槨) 하나가 나왔는데, 여기에 “답답하던 가성이 3천 년 만에 태양을 보았네. 아, 등공이 이곳에 머물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居此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이에 등공이 유언하여 자신이 죽은 뒤에 이곳에 장사지내게 했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西京雜記 卷4>
가성운불비[歌聲雲不飛] 옛날 진(秦)나라에 노래를 아주 잘했던 진청(秦靑)이란 사람이 자기의 제자 설담(薛譚)을 전송하는 자리에서 손수 박자를 치며 슬피 노래하니, 구슬픈 노랫소리가 숲을 진동하여 메아리가 멀리 가는 구름을 멈추게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뛰어난 시가(詩歌)를 의미한다. <列子 湯問>
가성울울[佳城鬱鬱] 한(漢)나라 등공(滕公)의 장례 행렬이 동도문(東都門) 밖에 이르자 말이 울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은 채 발로 오랫동안 땅을 구르기에, 사졸(士卒)을 시켜 땅을 파 보니 깊이 석 자쯤 들어간 곳에 석곽(石槨)이 있고, 거기에 “가성이 울울하니, 삼천년 만에야 해를 보도다. 아아, 등공이여 이 실에 거처하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 居此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한다. <西京雜記 卷4>
가성일관[佳城日關] 무덤에 안장되는 것을 말한다. 한(漢)나라 등공(滕公)이 말을 타고 가다가 동도문(東都門) 밖에 이르자 말이 울면서 앞으로 나가지 않고 발로 오랫동안 땅을 굴렀다. 사졸(士卒)을 시켜 땅을 파보니 석곽(石槨)이 나왔는데 거기에 “답답한 무덤이 삼천 년만에 해를 보리라. 아아! 등공이여, 이 방에 거처하리라.[佳城鬱鬱, 三千年見白日, 吁嗟滕公, 居此室.]”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西京雜記 卷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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