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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호계진[鑑湖季眞]~감회풍운[感會風雲]~감희감차[堪喜堪嗟]


감형막여지수 감패막여망국[鑒(鑑)形莫如止水 鑒敗莫如亡國]  사람의 모습을 비춰보는 것은 잔잔한 물만 한 것이 없고, 실패를 비춰보는 것은 멸망한 나라만 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감호[鑑湖]  경호(鏡湖)와 같은 말로, 중국 소흥현(紹興縣)에 있는 호수 이름이다. 당 현종(唐玄宗) 때 비서감(秘書監)을 지낸 시인 하지장(賀知章)이 만년인 천보(天寶) 3년에 병이 들어 도사(道士)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하자 현종이 조서를 내려 이를 허락하였고, 조정에서 감호(鑑湖)와 섬천(剡川) 일대의 땅을 하사하였다. 이에 그는 천추관(千秋關)이란 도관(道觀)을 지어 살았다. <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賀知章>

감호[鑑湖]  마진(馬臻)이 후한 순제(後漢順帝) 때 회계태수(會稽太守)가 되어 절강(浙江) 소흥(紹興)에 관개를 위해 만든 호수가 경호(鏡湖)인데, 뒤에 감호(鑑湖)로 명칭이 바뀌었다. <通典 卷2 食貨 2 水利田>

감호[鑑湖]  중국 절강성에 있는 호수 이름이다. 경호(鏡湖)·장호(長湖) 등으로도 불린다. 당 현종(唐玄宗) 때 비서감(秘書監) 하지장(賀知章)이 은퇴할 적에, 주궁호(周宮湖) 수경(數頃)을 자신의 방생지(放生池)로 삼게 해 주기를 요구하였는데, 현종의 특명에 의해 감호 한 굽이를 하사 받았다는 고사가 있다.<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賀知章>

감호계진[鑑湖季眞]  감호는 경호(鏡湖)이고, 계진은 하지장(賀知章)의 자이다. 그는 월(越)의 영흥(永興) 사람인데, 성품이 호방하였다. 그의 고모 아들 육상선(陸象先)이 말하기를 “고상한 이야기를 잘하는 계진의 풍류를 하루만 보지 않으면 비루한 습관이 생긴다.”라고 하였다. 숙종(肅宗)이 태자(太子)로 있을 적에 빈객(賓客)으로 있다가 비서감(祕書監)이 되었다. 만년에 접어들어 호탕하게 살면서 사명광객(四明狂客)으로 자칭하였다. 천보(天寶) 초기에 병중에 천제(天帝)가 사는 곳에서 노니는 꿈을 꾸고 나서 도사(道士)가 될 것을 요청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집을 지어 천추관(千秋觀)으로 만들자 숙종이 시를 지어 주었고 하지장이 경호를 하사해 달라고 요청하니, 숙종이 경호의 섬천(剡川) 일곡(一曲)을 하사하였다. <新唐書 卷196 隱逸列傳 賀知章>

감호도[鑑湖圖]  감호는 호수의 이름이니 곧 감호의 그림을 말한다. 이 호수는 절강성(浙江省) 소흥현(紹興縣) 남쪽에 있으니, 경호(鏡湖)·장호(長湖)·태호(太湖)라 불리기도 한다. 한(漢)나라 때 마진(馬臻)이 이 호수를 준설하여 9천여 경의 전지에 물을 대게 하였다.

감호일곡[鑑湖一曲]  하지장(賀知章)이 늙어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회계(會稽)로 돌아가는데 임금이 회계에 있는 감호(鑑湖)의 한 굽이[一曲]를 주었다.

감회[勘會]  자세히 조사하여 의정(議定)함을 이른다.

감회풍운[感會風雲]  풍운(風雲)은 군주와 신하가 서로 만남을 의미한다. 주역(周易) 건괘(乾卦) 구오효사(九五爻辭)에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 봄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 하였는데, 나는 용은 성군(聖君)을 비유하고 대인(大人)은 어진 신하를 비유한 것이다. 문언전(文言傳)에 이것을 인용하고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雲從龍 風從虎]”라고 하였다.

감흥[感興]  주자(朱子)는 공자의 춘추필법(春秋筆法)을 따라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지었으며, 또 감회를 일으키고 감흥시(感興詩)를 지었다.

감희감차[堪喜堪嗟]  낙천(樂天)은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의 자(字)이다. 백거이가 늦게야 아들을 얻고 “오십팔 세 되어서야 아들을 얻었으니, 기쁘기도 하거니와 한숨 또한 나오누나.[五十八翁方有後 靜思堪喜亦堪嗟]”라고 시를 읊은 바 있다. <白樂天詩集 卷12 予與微之老而無子發於言歎者在詩篇今年冬各有一子戲作二什一以相賀一以自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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