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帢] 위 무제(魏武帝)가 만든 네모 질룩한 고깔이다.
갑검비[匣劒悲] 상고의 제왕 전욱(顓頊)에게 예영(曳影)이란 검이 있었는데, 사방에서 적이 쳐들어올 경우 이 검이 스스로 허공에 뛰어올라 어느 곳을 가리키는데 그곳으로 공격하면 반드시 승리하였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이 검이 갑 속에서 늘 울었다 한다. 일반적으로 재능을 품고 세상에 쓰이지 못하고 불우하게 일생을 사는 경우를 뜻한다.
갑검유등[匣劍帷燈] 갑(匣: 물건을 담는 작은 상자) 속의 보검과 휘장 안의 밝은 등불. 검의 날카로운 기운과 불빛은 가릴 수 없음을 비유한 말로, 실제로 있는 명확한 사실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추지 못함을 이른다. 서경잡기(西京雜記) 권1에 “고제가 백사를 베었던 검은, 검의 위를 칠채주(七彩珠)와 구화옥(九華玉)으로 장식했고, 오색 유리를 섞어 검갑(劍匣)을 삼았다. 검은 방안에 두어도 그 빛이 마치 밖에 비치는 것 같아, 검을 뽑았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高帝斬白蛇劍, 劍上有七采珠, 九華玉以為飾, 雜廁五色琉璃為劍匣, 劍在室中, 光景猶照於外, 與挺劍不殊.]”라고 하였다.
갑검초소사두광[匣劍初銷射斗光] 간장(干將)과 막야(莫邪)의 두 명검(名劍)이 땅속에 묻혀서 하늘 위의 두우(斗牛) 사이에 자기(紫氣)를 내뿜고 있다가 발굴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갑골문자[甲骨文字] 갑골문자는 거북이 껍질(배와 등껍질 모두 사용)이나 소 어깨뼈 등에 새겨 넣은 문자들을 말한다. 기원전 14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는데 원시 국가에서 앞날을 점을 치는 내용과 그 결과를 기록한 내용이 많다. 그래서 갑골문을 복사(卜辭)라고도 한다. 날카로운 송곳이나 돌 같은 것으로 딱딱한 곳에 새기다 보니 자획 형태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갑과[甲科] 당대(唐代)에는 명경과(明經科)에 갑(甲)·을(乙)·병(丙)·정(丁) 4과(科)가 있었고, 진사시(進士試)에 갑과(甲科)와 을과(乙科)가 있었다.
갑과[甲科] 문과 시험에서 1등부터 3등까지를 갑과라 한다.
갑과[甲科] 전시(殿試)의 성적에 따라 나눈 등급의 하나. 과거에서 최종 시험인 전시의 성적에 의하여 갑과(甲科)·을과(乙科)·병과(丙科)로 나누고, 갑과에는 3인을 뽑아 첫째는 장원랑(壯元郞)이라 하고, 둘째는 방안(榜眼) 또는 아원(亞元)이라 하고, 셋째는 탐화랑(探花郞)이라 하였으며, 장원랑에게는 종6품의 품계를 주고, 나머지 2인에게는 정7품의 품계를 주었다. 그리고 을과에는 7인을 뽑아 이들에게는 정8품의 품계를 주고, 병과에는 23인을 뽑아 이들에게는 정9품의 품계를 주었다. <大典會通 吏典 諸科> <禮典 諸科>
갑관[甲觀] 갑관은 제일관(第一觀)과 같은 말로, 갑관(甲館)으로도 쓴다. 한(漢)나라 때의 누관(樓觀) 이름으로 원제(元帝)가 태자궁에 있을 때 성제(成帝)가 갑관 화당(畫堂)에서 태어나 적황손(嫡皇孫)이 되었다. 성제가 3세 되던 해에 조부인 선제(宣帝)가 죽고 원제가 제위에 오르자 갑관 화당에서 태어난 성제가 태자가 된 고사에서 유래하여 태자의 전고로 쓰인다. <漢書 卷10 成帝紀>
갑관[甲觀] 한(漢)나라 때 누관(樓觀)의 이름인데, 제일가는 누관[第一觀]이라는 말과 같다. 황태자가 거처하였기 때문에 후세에 보통 태자궁(太子宮)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한서(漢書) 권10 성제기(成帝紀)에 “원제(元帝)가 태자궁의 갑관 화당(畫堂)에서 태어나 세적황손(世嫡皇孫)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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