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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산법[開方算法]~개보개옥[改步改玉]~개복[改卜]


개방[開方]  제곱근이나 세제곱근 따위를 계산하여 그 답을 구하는 일을 말한다.

개방법[開方法]  수학 용어로서, 즉 平方根(平方根 제곱근)을 구하는 산법(算法)이다. 면적을 산출하는 방법이다.

개방산법[開方算法]  개립방법(開立方法)과 개평방법(開平方法)의 총칭으로, 개립법은 입방근(立方根: 3乘根승근)을 계산하여 답을 구하는 것이고, 개평법은 평방근(平方根: 自乘根자승근)을 계산하여 답을 구하는 방법이다.

개벌상산수[皆伐湘山樹]  진시황(秦始皇)이 상강(湘江)을 건너 상산(湘山)의 사당에 갈 적에 대풍(大風)이 일어나 건널 수 없게 되자 상군(湘君)이 어떤 신(神)이냐고 물었는데, 요(堯) 임금의 딸이요 순(舜) 임금의 처라는 박사(博士)의 대답을 듣고는 “시황이 이에 크게 노하여 도형수 3천 인으로 하여금 상산의 나무를 모두 뽑게 하여 민둥산으로 만들었다.[於是始皇大怒 使刑徒三千人皆伐湘山樹 赭其山]”라는 기사가 사기(史記) 권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나온다.

개벽[疥壁]  유양잡조(酉陽雜俎) 어자(語資)에 “선사(禪師) 현람(玄覽)이 형주(荊州) 척기사(陟屺寺)에 머물렀는데, 장조(張璪)가 고송(古松)을 재벽(齋壁)에 그리고 부재(符載)가 찬(贊)을 짓고 위상(衛象)은 시를 지으니 역시 한때의 삼절(三絶)이었다. 현람이 여기에다 백토(白土)를 바르자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말하기를 “일없이 내 벽에 부스럼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개보[介甫]  송(宋)나라 신종(神宗) 때의 재상 왕안석(王安石)으로, 개보는 그의 자이다. 호는 반산(半山), 형국공(荊國公)에 봉해졌다. 개혁 정치가이며 시인·문필가로 활약하였다. 신법(新法)이라는 개혁책을 통해 균수법(均輸法), 청묘법(靑苗法), 시역법(市易法), 모역법(募役法), 보갑법(保甲法), 보마법(保馬法) 등을 실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개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쟁이 격화되고 정치가 혼란에 빠지면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개보[開寶]  송 태조(宋太祖) 후기 968년부터 태종이 즉위한 976년까지의 연호이다.

개보개옥[改步改玉]  보폭(步幅)을 바꾸었으니 패옥(佩玉)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로 임금의 일을 대행(代行)하는 자리에서 물러나 신하의 지위로 돌아왔으니 임금의 패옥(佩玉)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임금이 시(尸)와 함께 걸을 때에 임금은 접무(接武: 尸가 디딘 발자국의 반을 밟고 감)하고, 대부(大夫)는 계무(繼武: 尸가 디딘 발자국의 끝을 밟고 감)하고, 사(士)는 중무(中武: 尸가 디딘 발자국에서 발 하나의 간격을 두고 따라감)한다.”고 하였으니, 각각 보폭(步幅)의 광협(廣狹)이 다르다. 보폭의 광협(廣狹)을 바꾸었으면 당연히 패옥(佩玉)의 등급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개보기품[介甫碁品]  개보는 송(宋) 나라 왕안석(王安石)의 자인데, 왕안석은 평소 남과 바둑을 둘 때 한 번도 깊이 생각해서 둔 적이 없었고, 자기가 지게 되면 매양 바둑판을 흐트려 버렸다고 한다.

개보례[開寶禮]  송(宋)나라 개보통례(開寶通禮)를 가리킨다. 송 태조(宋太祖) 개보(開寶) 연간에 유온수(劉溫叟), 이방(李昉) 등이 만들었다.

개보저노성위지인순[介甫詆老成謂之因循]  개보(介甫)가 노성인이 주저하기를 잘한다고 비난함. 개보는 송 나라 때의 문장가인 왕안석(王安石)의 자(字)이다. 사마광(司馬光)이 왕안석에게 신법(新法)을 행하면서 소인배를 중용한 이유를 물었다. 이에 왕안석은 법을 시행할 때에 구시대 인물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므로 재주와 역량이 있는 신진을 등용하여 법을 시행하고, 그 뒤에 노성인을 등용하여 법을 지킬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사마광은 소인배들은 진출시키기는 쉬워도 물러나게 하기는 어려우니, 아마도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충고하였다. <宋名臣言行錄 後集 卷7 司馬光>

개복[改卜]  기존(旣存)의 임금을 폐(廢)하고 유능한 사람을 골라 다시 임금으로 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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