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시[鉗市] 목에 쇠사슬을 감고 저잣거리에 끌려 다닌다는 뜻으로, 떠나야 할 때 떠나지 않다가 마침내 치명적인 굴욕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신공(申公)과 백생(白生)과 목생(穆生)이 동시에 전한(前漢)의 초원왕(楚元王)을 섬겼는데, 목생이 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원왕이 알고는 주연을 베풀 때마다 그를 위해 항상 감주[醴]를 내놓았다. 그런데 뒤에 원왕의 손자인 왕무(王戊)가 사위(嗣位)하여 주연을 베풀 적에 어느 날 깜박 잊고서 감주를 한번 내놓지 않자, 목생이 “이제 떠나가야겠다. 감주를 내놓지 않은 것은 왕의 뜻이 태만해진 것이니, 떠나지 않는다면 초나라 사람들이 장차 나의 목에 쇠사슬을 걸고 저잣거리를 끌고 다닐 것이다.[可以逝矣 醴酒不設 王之意怠 不去 楚人將鉗我於市]”라고 하면서, 신공과 백생이 극력 만류함에도 불구하고 병을 핑계로 마침내 떠나갔는데, 신공과 백생은 계속 남아 있다가 결국에는 서미(胥靡)의 형(刑)을 받고서 붉은 옷[赭衣]을 몸에 걸치고 저잣거리에서 절구질하는 치욕을 당하였다. <漢書 卷36 楚元王傳> 서미(胥靡)에 대해서 안사고(顔師古)는 “서로들 줄줄이 묶여 복역하기 때문에 서미라고 하니, 오늘날 복역하는 죄수들이 쇠사슬로 서로들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다.[聯繫使相隨而服役之 故謂之胥靡 猶今之役囚徒以鎖聯綴耳]”라고 해설하였다.
겸시독[兼侍讀] 한림원시독학사(翰林院侍讀學士)를 이르는데, 모두 겸직이었으므로 겸시독(兼侍讀)이라고 칭하였다. 시독학사(侍讀學士)는 천자의 경연(經筵)에서 강의하는 책무를 맡았다.
겸애[兼愛] 묵적(墨翟)이 주장한 설로, 친근(親近)하고 소원(疎遠)함에 관계없이 모든 대상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설인데, 유자(儒者)들로부터 이단의 취급을 받는 학설이다.
겸애무사 차인의지정야[兼愛無私 此仁義之情也]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여 사심이 없는 것, 이것이 바로 인의의 실정임. 사심이 없다는 것은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겸애설[兼愛說] 춘추 전국시대 노(魯)나라 사람인 묵적(墨翟)이 말한 것으로, 유가(儒家)의 ‘사랑에 차등을 둔다[愛有等差]’라는 설에 상대하여 등급의 차이를 두지 않으며 멀고 가까운 것을 구분하지 않고서 두루 사랑한다는 뜻이다. 맹자(孟子)진심 상(盡心上)에 “묵적은 겸애하니 자기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갈더라도 천하에 이로움이 된다면 할 사람이다.[墨子兼愛, 摩頂放踵, 利天下, 爲之.]”라고 하였다.
겸약공매[兼弱攻昧] 약한 나라를 겸병하여 취하고 어두운(혼우한) 자를 공격하여 멸망시킴을 이른다. 서경(書經) 중훼지고(仲虺之誥)에 “제후중에 어진 이를 돕고 덕(德)이 있는 사람을 보조하시며, 충실한 사람을 드러내고 선량한 사람을 진취시키며, 약한 나라를 겸병하고 혼매한 나라를 공격하며, 어지러운 나라를 빼앗고 망할 형상이 있는 나라를 업신여기시어, 망할 길이 보이는 나라를 밀어내고 보존할 길이 보이는 나라를 튼튼하게 해주셔야 나라가 창성해질 것입니다.[佑賢輔德, 顯忠遂良, 兼弱攻昧, 取亂侮亡, 推亡固存, 邦乃其昌.]”라고 하였다.
겸양지덕[謙讓之德] 겸손(謙遜)하고 사양(辭讓)하는 미덕(美德)을 이른다.
겸의령타옥[蒹倚怜他玉] 겸가(蒹葭)가 옥수(玉樹)에 의지하다. 겸가는 갈대인데, 갈대같이 변변찮은 자가 옥으로 만든 나무같이 훌륭한 인물에게 의지한다는 뜻이다.
겸의옥[蒹倚玉] 변변치 못한 사람이 훌륭한 사람에게 의지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에 “위 명제(魏明帝)가 황후의 아우 모증(毛曾)을 하후 현(夏侯玄)과 같이 앉게 하니, 그때 사람들이 ‘갈대가 옥수(玉樹)에 의지하였다.’라 했다”라고 하였다.
겸인[傔人] 실내에서 수령의 잔심부름을 맡아보던 사사로운 종이다. 청지기, 또는 겸종(傔從)이라고도 한다.
겸인지력[兼人之力] 능히 몇 사람을 당해낼 만한 힘을 이른다..
겸인지용[兼人之勇] 몇 사람을 능(能)히 당해낼 만한 용기(勇氣)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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