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刳] 도려내다. 깎아내다.
고[孤] 벼슬 이름으로 곧 고경(孤卿)이다. 주례주소(周禮注疏)에서 ‘공지고(公之孤)’에 대하여 정사농(鄭司農)은 “9명(命)인 상공(上公)은 고경(孤卿) 한 사람을 두게 된다.”라고 주(注)를 달았다.
고[考] 선친(先親)에 대한 호칭이다. 생존 시에는 부(父), 모(母), 처(妻)라 하고, 죽은 뒤에는 고(考), 비(妣), 빈(嬪)이라 한다. <禮記 曲禮下>
고[孤] 의지할 데가 없다.
고[庫] 일정한 곳의 논밭을 말한다. 성종실록(成宗實錄) 6년 4월 23일 조에 “토속어로 전지가 있는 곳을 고라 한다.[俗以田之所在謂庫]”고 하였다.
고[瞽] 주(周)나라 때의 관직 이름으로, 태사(太師)로서 임금을 곁에서 모시고 송시(誦詩)와 풍간(風諫)하는 일을 맡은 관원이다.
고[孤]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제후(諸侯)가 자신을 칭하여 과인(寡人)이라고 하였는데, 흉사(凶事)가 있으면 고(孤)라고 칭하였다. 그러나 후대에는 점점 구별이 없어져 혼용하였다.
고가[藁街] 죄인의 머리를 참하고서 메어놓던 거리. 원래는 한(漢) 나라 때의 거리 이름이다. 한나라 시대 장안(長安)의 만이(蠻夷)가 살던 거류지이다. 원제 때 진탕이 왕명을 칭탁하고는 질지선우의 머리를 베어 고가에 10일 동안 메달아 두었다는 고사가 있다.
고가[藁街] 사람의 통행이 많은 거리를 말한다. 원래 한(漢)나라 때의 가로(街路) 이름으로, 장안성(長安城)의 남문(南門) 안에 있었는데, 속국(屬國)의 사관(使館)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在長安城南門內 爲屬國使節館舍所在地]. 호전(胡銓)의 봉사(封事)에 “세 사람의 머리를 베어서 고가(藁街)에 달기를 원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주륙하여 위세를 보임을 뜻한다.
고가[藁街] 한나라 때 장안에 있던 거리의 이름이다. 당시에 속국들의 사신이 묵는 관사(館舍)가 이곳에 모여 있었는데, 죄인의 머리를 이곳에 달아매어 사람들에게 보였다. 전하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죄수의 머리를 효시(梟示)할 때 쓰이는 말이 되었다. 한서(漢書) 권70 진양전(陳湯傳)에 “질지(郅支)의 목과 명왕(明王) 이하의 목을 베어 고가(藁街)에 달아 모든 나라에 보여 주어야 한다.” 하였다.
고가[藁街] 한대(漢代)의 장안성(長安城) 남문(南門) 안에 있던 거리의 이름인데, 당(唐)나라 시인 원진(元稹)의 수우원익심기주절도사제(授牛元翼深冀州節度使制)에 의하면 “진실로 되놈의 머리를 얻으면 고가에 걸어 놓으리라.[苟獲戎首 置之藁街]”라고 하였다.
고가[高駕] 준마(駿馬), 가마 등의 훌륭한 탈 것을 말한다.
고가[袴歌] 바지를 노래함. 지방관의 선정(善政)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後漢) 때 염범(廉范)이 일찍이 촉군태수(蜀郡太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자, 백성들이 그를 좋아하여 노래하기를 “염숙도여, 어찌 그리 늦게 왔느뇨. 불을 금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밤일을 편안히 하여, 평생에 속옷도 없다가 이젠 바지가 다섯 벌이라네.[廉叔度 來何暮 不禁火 民安作 平生無襦今五袴]”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숙도(叔度)는 염범의 자이다. <後漢書 卷31 廉范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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