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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변[高騈]~고병[高棅]


고변[高騈]  고변은 당 희종(唐僖宗) 때의 무신으로, 그가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가 되었을 때 마침 황소(黃巢)의 반란이 일어났다. 이에 앞서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한 지 7년 만에 18세의 나이로 당나라의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한 후 표수현위(漂水縣尉)가 된 지 10여 년 만에 사직하고 이어 고변의 추천으로 관역순관(館驛巡官)이 되었다. 이때에 이르러 황소의 반란이 일어나자, 고변이 제도행영병마도통(諸道行營兵馬都統)이 되어 황소를 토벌할 때 최치원이 고변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격황소서(檄黃巢書)를 사륙변려문(四六騈儷文)으로 대필한 것이 명문으로 널리 알려져서 이 때문에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문명(文名)을 크게 떨치게 되었다.

고변[高騈]  당나라 말기의 문신으로 중국 섬서성 유주인(幽州人)이다. 글을 좋아하여 선비를 친구로 삼았는데, 여러 차례 반란군을 진압하였다. 황소의 난을 진압할 때 진격을 늦추자 싸울 의지가 없다고 하여 중도에 병권을 빼앗겼다.

고변[高騈]  황소(黃巢)의 난을 평정하여 천하에 위명(威名)을 떨쳤으나, 여용지(呂用之)의 말을 믿다가 황제의 신임을 잃은 뒤, 신선방술(神仙方術)에 빠져 군무(軍務)를 여용지(呂用之)에게 맡기고 세금을 과도하게 매기고 형벌을 남용하다가 결국 부장(部將) 필사탁(畢師鐸) 등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唐書 卷224下>

고변[高騈]  당나라 유주(幽州) 사람으로 자는 천리(千里)이고 문학가이다. 대대로 금군 장령(禁軍將領)을 지냈는데, 황소(黃巢)의 난을 진압하다 양주자사(揚州刺史)로 좌천되었다. 도가적 방술을 사용한다는 여용지(呂用之)와 장린(張璘)에게 현혹되어 가혹한 정치를 하다가 뒤에 부장(部將) 필사탁(畢師鐸)에게 살해되었다.

고병[高棅]  명(明) 나라 학자이다. 호는 소대(嘯臺) 또는 만사(漫士). 박학(博學)하고 문장에 능했으면 특히 시에 뛰어났다. 저서에, 소대집(嘯臺集)·당시품휘(唐詩品彙) 등이 있다. 뒤에 이름을 정례(廷禮)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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