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高適] 당대(唐代)의 시인으로 특히 칠언고시에 뛰어났고, 같은 시인인 잠삼(岑參)과 함께 고잠(高岑)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특히 기절(氣節)을 대단히 숭상하였으며, 일찍이 간의대부(諫議大夫),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등을 역임하고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에 이르러 발해현후(渤海縣侯)에 봉해졌다. <新唐書 卷143 高適列傳>
고적[高適] 고적은 당 숙종(唐肅宗) 때의 시인이며 문신으로 특히 절의를 숭상하였고, 일찍이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로 나가서는 강회(江淮)의 난리를 평정하기도 했는데, 두보(杜甫)의 송고삼십오서기(送高三十五書記) 시에 “십 년 동안 막부에 나가 있었으니, 스스로 군대를 지휘할 만하거니와, 이번 길엔 특출한 재능 펴게 됐으니, 내 생각도 위로될 만하고말고.[十年出幕府 自可持旌麾 此行旣特達 足以慰所思]”라고 하였다.
고적[高適] 당 현종(唐玄宗) 때 시인(詩人)으로, 발해(渤海) 사람이며 자는 달부(達夫)이다.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를 지냈다. 그는 나이 50이 넘어서야 비로소 시를 짓기 시작하였으나 특히 칠언고시(七言古詩)에 뛰어났고, 당시 잠삼(岑參)과 시명(詩名)을 나란히 했다고 한다. 변새시(邊塞詩)에 뛰어났다. 저서로는 고상시집(高常詩集)이 있다. <唐書 卷一百四十三 高適傳>
고적[考績] 관리의 공적을 고찰(考察)하는 것이다. 명(明)나라 때에는 9년이 만기인데, 3년은 초고(初考), 6년은 재고(再考), 9년은 통고(通考)라 한다. 고만(考滿)과 고찰(考察)에 의해 승진·강등 또는 파면한다. <明史 卷71 選擧志 3 考滿>
고적간[庫狄干]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 때 사람으로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북위(北魏)에서 정주자사(定州刺史)·태사(太師)를 지내고, 북제(北齊) 문선제(文宣帝) 때 장무군왕(章武郡王)에 봉해졌다. <北齊書 卷15 庫狄干列傳> <北史 卷54 庫狄干列傳>
고적유명[考績幽明] 상서(尙書) 우서(虞書) 순전(舜典)에 “3년 만에 실적을 고찰하고 세 번 고찰하여 9년이 되었을 때 유능한 자는 승진시키고 무능한 자는 내쫓는다.[三載考績 三考黜陟幽明]”라고 한 데서 나온 것이다.
고적의[考績議] 관리의 성적을 상고하는 일에 대한 의논으로 임금에게 드리는 것이다.
고적지인[告賊之人] 왕사칙(王士則)과 왕사평(王士平)을 이른다. 이들은 신책군(神策軍)의 장사(將士)로 원화(元和) 10년 6월에 도적의 이름을 들어 상주(上奏)하고, 또 왕승종(王承宗)이 사주(使嗾)한 일이라고 말하였다. <舊唐書 憲宗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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