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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위산[孔子爲山]~공자이화[共藉梨花]~공자인지[孔子仁之]


공자위산[孔子爲山]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아홉 길의 산을 만드는 데 흙 한 삼태기가 부족하여 목표한 것을 달성하지 못한다.[爲山九仞, 功虧一簣.]” 하였는데, 공자(孔子)는 이것을 빌려 “산을 만을 만드는 것에 비유하자면, 비록 흙 한 삼태기가 부족하여 산을 이루지 못하고 중지하는 것도 내가 중지하는 것이며, 비록 평지에 한 삼태기의 흙을 쏟아 부어 전진하더라도 내가 전진하는 것이다.[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라고 하였다. <論語 子罕>

공자유어광[孔子遊於匡]  공자(孔子)가 광(匡)이라는 땅에 여행함. 광(匡)은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지명(地名)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나, 춘추시대에는 광(匡)이라는 땅이 여러 곳에 있었다고도 한다. 공자(孔子)가 이 광(匡) 땅에서 재액(災厄)을 당한 것은 논어(論語) 자한(子罕)과 선진(先進)에 “선생님께서 광(匡) 땅에서 어려움[危難]을 겪으셨다.[子畏於匡]”라고 한 기록과 관련이 있다. 한편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는 이것이 공자(孔子) 57세 때, 위(衛)나라로부터 진(陳)나라로 향해 가는 도중의 사건으로 되어 있다.

공자이화작한식[共藉梨花作寒食]  소식(蘇軾)의 송표제정육지초주(送表弟程六知楚州) 시에 “남은 생애를 벼슬살이에 얽매이지 않고, 선영에 가서 응당 성묘할 날이 있으리니, 공 이루고 백발 되거든 일찍 돌아와서, 우리 함께 배꽃 마주해 한식을 보내지 않으려나.[莫敎印綬繫餘年 去掃墳墓當有日 功成頭白早歸來 共藉梨花作寒食]”라고 하였다.

공자인지[孔子仁之]  공자인지(孔子仁之)는 자로가 공자(孔子)에게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자, 공자 규를 모시던 소홀은 따라 죽었으나 관중도 규를 모시었는데 따라 죽지도 않았습니다.[桓公殺公子糾, 召忽死之, 管仲不死.] 관중은 인의(仁義)롭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未仁乎?]”고 묻자, 공자(孔子)가 “환공(桓公)이 제후(諸侯)를 규합하되 병거(兵車)로 하지 않은 것은 관중(管仲)의 힘이니, 누가 그 인(仁) 같겠는가, 누가 그 인(仁) 같겠는가.[桓公九合諸侯, 不以兵車, 管仲之力也. 如其仁, 如其仁.]”라고 말하여, 관중(管仲)이 인(仁)의 도를 행한 것을 찬미한 것을 말한다. ‘누가 그 인(仁) 같겠는가[如其仁]’라는 것은 ‘세상에 어느 누가 관중(管仲)이 했던 것처럼 인(仁)의 도를 행한 것으로 이름날 자가 있겠느냐.’는 뜻이다. <論語 憲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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