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적[科籍] 과거를 본 선비라고 호적에 올리는 일을 뜻한다.
과적[科賊] 과거에 합격하기 위하여 부정한 짓을 저지른 사람을 가리킨다.
과전[裹氊] 군대가 지형이 매우 험한 곳을 쳐들어갈 경우 몸을 보호하기 위해 담요로 감싸는 것을 말한다. 위(魏)나라 등예(鄧艾)가 촉(蜀)나라를 정벌할 때 700여 리를 무인지경으로 달려갔는데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너무 위태하자 ‘등예는 담요로 스스로를 감싼 뒤 굴러서 내려갔고 다른 병사들은 나무를 부여잡고 절벽 가를 더듬으며 물고기 꿰미처럼 한 줄로 나아갔다.[艾以氈自裹 推轉而下 將士皆攀木緣崖 魚貫而進]’는 고사가 있다. <事文類聚 居處部>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 조식(曹植)의 군자행(君子行)에 “군자는 매사를 미연에 방지하여, 혐의로운 지경에 처하지 않나니, 오이밭에선 신끈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선 관을 바루지 않는다.[君子防未然 不處嫌疑間 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이는 곧 오이밭에서 허리를 굽혀 신끈을 고쳐 맬 경우 오이를 땄다는 혐의를 받게 되고, 오얏나무 밑에서 두 손을 들어 관을 바르게 쓸 경우 오얏을 땄다는 혐의를 받게 되므로, 그런 혐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뜻에서 한 말이다.
과전월험[裹氈越險] 삼국 시대 위(魏)나라 등애(鄧艾)가 대군을 일으켜 촉(蜀)을 정벌할 적에 인적이 끊어진 음평(陰平)의 험한 산길을 한겨울에 넘어가서 촉장(蜀將) 제갈첨(諸葛瞻)의 목을 베고 성도(成都)로 들어갔는데, 이때 ‘등애 자신이 담요로 몸을 감싸고 험한 길을 뒹굴어 내려오는가 하면, 군사들이 모두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벼랑길을 따라가며 마치 물고기를 한 줄로 꿰듯 한 사람씩 지나갔다.[艾以氈自裹 推轉而下 將士皆攀木緣崖 魚貫而進]’라는 기록이 전한다. <三國志 卷28 魏書 鄧艾傳>
과전이하[瓜田李下]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는 뜻으로, 의심받을 일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조식(曹植)의 군자행(君子行)에 “오이밭에선 신끈을 고쳐 매지 않고, 오얏나무 밑에선 관을 바루지 않는다.[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는 구절에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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