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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강경호


고향을 떠나 아들네 집에 살러 갈 때

평생하던 고생 끝이라며 좋아하던 아버지는

집안의 나무를 뽑아 아들네 정원에 심었다.

무딘 삽이며 괭이, 쇠스랑

하다 못해 농약통이며 쓸 일이라곤 없는

얼개미까지 차에 실었다.

그 중에서도 든든하고 당당한 것은

마지막 농사지은 쌀가마니를

아들네 창고에 가득 채운 일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농기구들이 벌겋게 녹이 슬어 가지만

쌀가마니를 만져보며 세어보는 재미로 살았다.

이태가 지나고

슬금슬금 창고의 쌀이 바닥나고

아들네가 마트에서 새 쌀을 실어올 때

아버지는 묵은 쌀처럼 풀기를 잃었다.

이제 아버지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장성한 아들도, 집도, 손주놈들까지도

모두 아버지 손 밖이었다.

한 삼십 년쯤 후

지금 내 손아귀에 노는 놈들 중

어떤 놈에게 얹혀 사는 아버지가 된 나를 생각했다.

땅 한 평 갖지 못하고 쇠스랑이며 농기구도 없는 나를

쌀 한 톨도 갖지 못한 나를

아들네 정원에 심을 나무 한 그루 키우지 못한 나를

주변에 널브러진 쓰레기만 가득한 나를

그래서 갈 길이 바쁜 나를.

– 강경호 –

시집 <함부로 성호를 긋다> 2004 천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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