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왜궁[館娃宮] 미녀가 사는 궁으로, 전국 시대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서시(西施)를 총애하여 거처하게 했던 궁(宮)의 이름이다.
관외[關外] 양관(陽關) 밖을 가리킨 것으로, 전하여 먼 지방을 뜻한다. 옛사람들이 흔히 이 양관에서 손님을 전송했던바, 왕유(王維)의 송원이사안서(送元二使安西) 시에 의하면 “위성의 아침 비가 가벼운 먼지를 적시니, 객사는 푸르고 푸르러 버들 빛이 새롭구나. 한 잔 술 더 기울이라 그대에게 권한 까닭은, 서쪽으로 양관을 나가면 친구가 없기 때문일세.[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進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라고 하였다.
관요[寬饒] 관요는 한(漢) 나라 개관요(蓋寬饒)를 말하는데, 자(字)는 차공(次公)이다. 성품이 청렴하고 강직하여 거리낌이 없었다. 한 선제(漢宣帝) 때 명경(明經)과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태중대부(太中大夫)와 사예교위(司隸校尉) 등을 지냈다. 형법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 것과 환관을 관직에 임명하지 말 것, 유술(儒術)에 힘쓸 것을 주장했다. 공경(公卿)과 귀척(貴戚)들의 죄상을 몰래 조사하여 검거하자 모두 두려워하여 감히 법을 어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재난에 빠지는 것을 너무 좋아했고, 강직하기가 지나쳐 꾸짖기를 좋아해서 선제의 뜻조차 거스르게 되었다. 황제에게 선양을 부추긴다는 모함을 듣고 투옥되자 자살하였다. 합관요(盍寬饒)라고 읽기도 한다.
관용방[關龍逄] 관용봉(關龍逢). 하걸(夏桀)의 충신이다. 걸(桀)임금이 주색(酒色)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주지(酒池)와 조구(糟丘)를 만들어 밤새도록 술을 마셨다. 이에 충간을 하며 물러나지 않다가 투옥당한 뒤 살해되었다. 일설에 ‘관룡’은 ‘환룡(豢龍)’으로, 관(關)과 환(豢)은 고자(古字)에서 서로 통한다고 한다. 그래서 용을 기르는 직책에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관용봉[關龍逢] 하(夏)나라 말기 사람. 하(夏)나라 걸왕(桀王)이 황음무도(荒淫無道)하여 조정의 정치를 돌보지 않았을 때에, 관용봉은 늘 직간(直諫)을 하면서 물러나오지 않았다. 이에 걸왕(桀王)은 관룡봉이 요망한 말로 윗사람을 농락한다고 죄를 묻고 구금하여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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