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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와사와[官蛙私蛙]~관완[觀翫]~관왕묘[關王廟]


관와사와[官蛙私蛙]  진 혜제(晉惠帝)가 천성이 혼암(昏暗)하여, 태자(太子)로 있을 때 밖에 나갔다가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는 옆 사람에게 “저것이 관(官)의 개구리냐, 사가[私]의 개구리냐?”라고 묻자, 시신(侍臣) 가윤(賈胤)이 대답하기를 “관의 땅에 있는 놈은 관의 개구리이고, 사가의 땅에 있는 놈은 사가의 개구리입니다.” 하니, 명하여 이르기를 “관의 개구리에게는 늠료(廩料)를 지급하라.” 하였고, 즉위한 뒤에는 화림원(華林園)에서 놀다가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듣고 좌우 신하들에게 묻기를 “저 개구리가 관을 위해서 우느냐, 사가를 위해서 우느냐?” 하자, 혹자가 대답하기를 “관의 땅에 있는 놈은 관을 위해서 울고, 사가의 땅에 있는 놈은 사가를 위해서 웁니다.”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이다. <晉中記>

관완[觀翫]  관(觀)은 한 번 보고서 결단하는 것이고, 완(翫)은 반복하여 보아 중단하지 않는 것이다.

관왕묘[關王廟]  중국(中國)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명장으로 무안왕(武安王)에 추봉(追封)된 관우(關羽)의 영(靈)을 모신 사당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왜란 후에 수호신(守護神)으로 봉안하였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기부터 관왕묘를 건립하여 일반 시민에게까지도 그 신앙이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년, 정유년의 왜란 때에 명나라 장수(將帥)들의 건의에 의해 처음으로 서울 남대문인 숭례문(崇禮門) 밖에 관왕묘가 건립되었고, 뒤이어 또 동대문 밖에 동관왕묘(東關王廟)가 건립되었다고 한다. 또한 전하는 말에 의하면, 외적과의 전투가 있을 때마다 꿈에 관왕(關王)의 영혼이 나타나서 신병(神兵)이 명나라의 군사를 도와주었다고 하며, 우리 조선에서도 임진년, 정유년의 왜란 당시 전투가 있을 때마다 자주 관왕의 영혼이 나타나서 신병이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고 한다.

관왕묘[關王廟]  원래 관왕묘는 삼국 시대 촉한(蜀漢)의 무장(武將) 관우(關羽)를 모시기 위해 세운 묘로서, 일명 관제묘(關帝廟)라고도 한다. 관우를 신(神)으로 신봉하면 전시(戰時)에 관우가 나타나 적을 멸해 준다는 전설에서 건립되었으며, 우리나라에는 1598년(선조31)에 성주(星州)와 안동(安東)에 명나라 군사들이 처음 세웠고, 이어 서울에도 동관왕묘(東關王廟)와 남관왕묘(南關王廟)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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