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군[寇君] 구군은 후한 광무제(後漢光武帝) 때의 지방관 구순(寇恂)이다. 구순이 영천 태수(潁川太守)가 되어 고을을 잘 다스리고 이임하였는데, 뒤에 광무제가 영천의 도적을 평정할 때 구순이 광무제를 따라가 영천에 이르렀다. 그러자 영천의 백성들이 길을 막고서 광무제에게 “구군을 우리에게 1년 동안만 빌려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소연하였던 고사가 있다. <後漢書 卷16 寇恂列傳>
구군[九郡] 남해(南海), 창오(蒼梧), 울림(鬱林), 합포(合浦), 교지(交趾), 구진(九眞), 일남(日南), 주애(珠厓), 담이(儋耳)이다.
구군[驅軍] 사냥을 할 때 짐승몰이를 하거나, 짐을 실어 나를 때 말과 소를 모는 사람을 말한다.
구군[九軍] 천자(天子)는 육군(六軍)이고 제후(諸侯)는 삼군(三軍)인데, 이를 통틀어 구군이라고 일컫는다.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에 “용사 한 명이 구군을 뚫고 들어간다.[勇士一人雄入於九軍]”라고 하였다.
구군양이공맹호[驅群羊而攻猛虎] 전국 시대의 종횡가(縱橫家)인 장의(張儀)가 초왕(楚王)에게 유세하면서 “그리고 저 합종책(合從策)이라는 것은 양 떼를 몰아서 사나운 범을 공격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범과 양은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한데, 지금 왕께서 맹호와 함께하지 않고 양 떼와 함께하고 계시니, 나는 대왕의 계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且夫爲從者 無以異於驅群羊而攻猛虎 虎之與羊不格明矣 今王不與猛虎而與群羊 臣竊以爲大王之計過也]”라고 소진(蘇秦)의 합종책을 비난한 대목이 사기(史記) 권70 장의열전(張儀列傳)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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