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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납미이납성[口內味耳內聲]~구낭저지[扣囊底智]~구내공[寇萊公]


구납미이이납성[口內味而耳內聲]  입이 오미(五味)를 받아들이면 귀가 오성(五聲)을 즐기고, 귀가 오성을 즐기면 지기(志氣)가 생긴다. 국어(國語) 주어 하(周語下)에 “입으로는 다섯 가지 맛을 받아들이고 귀로는 다섯 가지 소리를 받아들여 맛과 소리가 기운을 낸다. 기운이 입에 있어서는 말이 되며 눈에 있어서는 눈 밝음이 된다.[口內味而耳內聲 聲味生氣 氣在口爲言 在目爲明]”고 하였다.

구낭저지[扣囊底智]  후연(後燕) 성무제(成武帝) 모용수(慕容垂)가 일찍이 거사(擧事)를 하려면서 말하기를 “나의 계략은 이미 결정되었다. 또 나는 늘그막에 이르렀는지라, 내 주머니 속의 지혜를 짜내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다시 역적을 남겨 두어 자손에게 누가 되지 않게 할 것이다.[吾計決矣 且吾投老 扣囊底智 足以克之 不復留逆賊以累子孫也]”라고 하였다. <晉書 卷123 載記 慕容垂>

구내공[寇萊公]  내공은 구준(寇準)의 봉호(封號). 구준이 뇌주(雷州)의 참군(參軍)으로 좌천되어 죽자, 서경(西京)으로 장사를 지내려고 경남(京南)의 공안현(公安縣)을 지나게 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길가에 나와 곡(哭)하며 제(祭)를 지내는데 대[竹]를 잘라 땅에 꽂고 지전(紙錢)을 걸어 놓았더니, 몇 달 있다가 보니 마른 대나무에서 순(筍)이 모두 나왔다 한다. <宋史 卷281 寇準傳>

구내공[寇萊公]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진 송나라 재상 구준(寇準)을 말한다. 진종(眞宗) 때 동평장사(同平章事)를 지냈고, 거란이 침입했을 때 조정의 논의를 반대하고 거란을 칠 것을 주장하여 거란을 격퇴하고 불가침 동맹을 맺게 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평생 동안 재산을 축적하지 않았고 조야의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宋史 卷281 寇準列傳>

구내공[寇萊公]  송(宋)나라 구준(寇準)을 말한다. 내국공(萊國公)에 봉해졌다 하여 구 내공이라 부른다. 자는 평중(平仲), 시호는 충민(忠敏)이다. 벼슬은 추밀원직학사(樞密院直學士)・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하였고 뒤에 애주사호참군(崖州司戶參軍)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宋史 卷281>

구내공[寇萊公]  송(宋)나라의 명상(名相)인 구준(寇準)이다. 내국공(萊國公)에 봉(封)해진 까닭에 구 내공으로 불린다. 태종(太宗) 때에 진사가 되어 대리 평사(大理評事), 추밀원 직학사(樞密院直學士) 등을 지냈다. 강직한 성품으로 직간(直諫)을 잘하여 태종이 위징(魏徵)에 비견하기도 하였다. 진종(眞宗) 때 동평장사(同平章事)를 지냈고, 요(遼)나라가 침입했을 때 조정의 논의를 반대하고 황제의 친정(親征)을 주장하였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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