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익[鉤弋] 한 나라 때의 궁궐 이름으로, 무제(武帝)의 총비인 조씨(趙氏), 즉 구익부인(鉤弋夫人)이 살던 곳이다. 구익부인 조씨는 잉태한 지 14개월 만에 한 소제(漢昭帝)를 낳았다.
구익부인[鉤弋夫] 구익 부인은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후궁 조씨(趙氏)이다. 무제는 여태자(戾太子)가 모함을 받고 자살하여 장성한 아들이 없자, 구익부인이 늦게 낳은 아들 불릉(弗陵)을 후계로 정하고, 후일에 황제의 모친이 되어 정권에 간여할까 염려하여 구익 부인에게 사약을 내려 죽였다. <史記 卷49 外戚世家, 卷9 呂后本紀>
구익부인[鉤弋夫人] 한 무제(漢武帝)의 후궁인데, 첩여(婕妤 궁중의 여관(女官)을 이름)가 되어 구익궁(鉤弋宮)에 있었으므로 구익부인이라 한다. 무제가, 그가 낳은 구익자(鉤弋子)를 태자로 세우려 하면서 아들은 어리고 어미는 젊으므로 그가 행여 음란할까 염려하여 사사(賜死)하였다. 구익자가 즉위하니 곧 소제(昭帝)이고, 소제는 그를 황태후(皇太后)로 추존하였다. <한서외척전漢書外戚傳>
구익이부[咎益伊傅] 구(咎)는 구유(咎繇)를 가리키는데, 순 임금의 신하인 고요(皐陶)의 별명이다. 익(益)은 우 임금을 도운 신하 백익(伯益)을 가리키고, 이(伊)는 탕 임금의 신하인 이윤(伊尹)을 가리키며, 부(傅)는 은나라 고종(高宗)을 도운 부열(傅說)을 가리킨다.
구인[舊人]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 생활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구식이어서 새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 (한시에서) 새 부인에 비교하여 옛 부인.
구인[九婣] 구인은 구족(九族)에게 모두 화목함을 이른다. 구족은 고조로부터 고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친척을 이른다.
구인[龜印] 귀인(龜印). 거북이 모양의 금으로 된 도장으로, 즉 관인(官印)을 말한다. 하지장(賀知章)이 이백(李白)을 처음 만났을 때 금귀(金龜)을 잡혀서 술을 마셨다 하는데, 금귀(金龜)는 금인귀뉴(金印龜紐)로 곧 거북 무늬 끈이 달린 금 인장이다. 한(漢) 나라 때 승상(丞相)과 대장군(大將軍) 및 열후(列侯)와 황태자(皇太子)가 금인구뉴를 찼다. <漢舊儀 補遺> 이백(李白)의 시 대주억하감(對酒憶賀監)에 “지난날 술을 그리 좋아하더니, 지금은 소나무 아래 흙이 되었네. 금귀를 술로 바꾸던 곳, 생각하니 눈물이 수건을 적시네.[昔好杯中物 翻為松下塵 金龜換酒處 卻憶淚沾巾]”라고 하였다.
구인[求仁] 인을 찾는 방법. 구인지공(求仁之功), 곧 구인지방(求仁之方)을 뜻한다.
구인[九仞] 아홉 길이라는 뜻으로, 아주 높은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일인(一仞)은 8자(약 2.4m)로 ‘썩 높은 것’을 형용(形容)하여 이르는 말이다.
구인[九人] 종친으로 당(唐)나라의 정승이 된 9명을 이른다. 상산왕(常山王)의 손자인 이적지(李適之)와 장평왕(長平王)의 증손인 이임보(李林甫)는 현종(玄宗) 때에 정승을 지냈고, 오왕(吳王) 각(恪)의 손자인 이현(李峴)은 숙종(肅宗) 때 정승이었고, 정혜왕(鄭惠王)의 증손인 이면(李勉)은 덕종(德宗) 때에 정승이었고, 정혜왕(鄭惠王)의 4세손인 이이간(李夷簡)은 헌종(憲宗) 때에 정승이었고, 양읍왕(襄邑王)의 5세손인 이정(李程)과 이석(李石)은 덕종(德宗) 때에 정승이었고, 이석(李石)의 아우인 이복(李福)은 선종(宣宗)과 희종(僖宗) 때에 정승이었고, 신흥왕(新興王)의 6세손인 이회(李回)는 무종(武宗) 때에 정승을 지냈다.
구인[九人] 황제(黃帝)를 보필한 의학자들인 추이계(僦㒃季), 기백(岐伯), 백고(伯高), 소유(少兪), 귀유구(鬼臾區), 소사(少師), 유부(兪跗), 동군(桐君), 뇌공(雷公)을 말한다. 황제씨(黃帝氏)가 위 아홉 사람과 함께 문답을 주고받아 황제내경영추(黃帝內經靈樞)와 황제내경소문(黃帝內經素問)의 내외(內外) 18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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