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어일궤[九仞於一簣] 오랜 공을 들인 일이 한 번의 실수로 허사가 되어 버림의 비유. 높이가 9인(仞), 곧 72척의 산을 쌓는데 한 삼태기의 흙이 부족하면 완성하는 최후의 순간에 가서 실패함을 뜻한다. <書經 旅獒>
구인이득인[求仁而得仁] 공자가 백이와 숙제에 대해서 “원래 인을 얻으려고 추구하다가 그 인을 얻었으니, 어찌 또 원망을 했겠는가.[求仁而得仁 又何怨]”라고 평한 말이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나온다.
구인일궤[九仞一簣] 사소한 방심으로 거의 완성된 사업이 헛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궤(簣)는 광(筐)과 같다. 흙을 담는 도구로, 대나무로 만든다. 상서(尙書) 여오(旅獒)에, 주 무왕(周武王)이 은나라를 멸하자 남방의 만족(蠻族)이 주나라의 강한 세력에 위축되어 앞 다투어 공물을 바쳐 친교를 맺으려고 하였다. 그 가운데 여(旅) 나라에서 오(獒)라는 개를 바쳤는데, 키가 넉 자나 되며 사람의 말귀도 알아듣는 명견이었다. 무왕이 이 개를 선물로 받고 매우 기뻐하자, 동생인 소공 석(召公奭)은 무왕이 개에 빠져 정치를 등한히 하지 않을까 경계하여 “아, 밤낮으로 근면하지 않을 수 없으니 사소한 행동에 힘쓰지 않으면 끝내 큰 덕을 이루지 못하리라. 아홉 길의 흙산을 만들다가 공은 한 삼태기 흙으로 이지러진다.[嗚呼. 夙夜罔或不勤. 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고 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공자(孔子)는 이것을 빌려 논어(論語) 자한(子罕)에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 것과 같으니, 한 삼태기의 흙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두어도 내가 그만둔 것이다. 비유하자면 땅을 고르는 것과 같으니, 한 삼태기의 흙을 부어서 나아갈지라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譬如爲山, 未成一簣, 止, 吾止也. 譬如平地, 雖覆一簣, 進, 吾往也.]”라고 하였다.
구인일궤[九仞一簣]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밤낮으로 혹시라도 부지런하지 않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작은 행실을 조심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에 누를 끼친 결과, 마치 아홉 길의 산을 쌓아 올리다가 한 삼태기의 흙을 덜 부어 망쳐 버리는 것처럼 될 것이다.[夙夜罔或不勤 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는 말이 나온다.
구인행[蚯蚓行] 태조 8년(925)에 궁성(宮城) 동쪽에 몸길이가 70척이나 되는 지렁이[蚯蚓]가 나타났다. 당시에 사람들은 발해국(渤海國)이 투항해 올 징조라 하였다. 9년에 거란(契丹)이 발해를 침공하여 군병을 진격시켜 홀한성(忽汗城)을 포위하였다. 발해 왕 대인선(大諲譔)이 전쟁에 패하여 항복을 청하였다. 거란 군주는 명령하여, 병사들로 대인선과 가족들을 호위하여 성을 나오도록 하였다. 발해를 개칭하여 동단(東丹)이라 하였다. 이에 발해의 세자 대광현(大光顯) 및 장군 신덕(申德), 예부 경(禮部卿) 태화균(太和鈞), 균로사 정(均老司政) 대원균(大元鈞), 공부 경(工部卿) 대복모(大福謩),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 대심리(大審理), 소장(小將) 모두간(冒豆干), 검교 개국남(檢校開國男) 박어(朴漁), 공부 경 오흥(吳興) 등이 그 패잔병을 거느리고 고려로 도망쳐 왔는데, 앞뒤로 도망쳐 온 자들이 수만 호에 이르렀다. 고려 왕이 그들을 매우 후하게 대우하였다. 대광현에게는 왕계(王繼)라는 성명을 하사하여 종적(宗籍)에 붙여 그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신하들에게도 모두 벼슬을 하사하였다.
구인휴일구[九仞虧一捄]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작은 행실을 신중히 하지 않으면 마침내 큰 덕에 누를 끼쳐, 아홉 길의 산을 만들다가 공이 흙 한 삼태기 모자란 데서 무너지는 격이 되리라.[不矜細行, 終累大德, 爲山九仞, 功虧一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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