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구작자[瞿鵲子]~구잠[屨簪]~구장[龜腸]~구장[枸醬]


구작자[瞿鵲子]  인명(人名). 까치처럼 경망하고 깜짝깜짝 놀라고 뛰어다니는 사람을 우화(寓化)・창작(創作)한 가공(架空)의 인물(人物)이다.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구작자(瞿鵲子)가 스승인 장오자(長梧子)에게 ‘공자(孔子)에게 들어보면, 성인(聖人)은 속된 세상일에 종사하지 않고 이로움을 추구하지 않으며 말하지 않아도 말한 듯, 말해도 말하지 않은 것처럼 표현되며 속세를 떠나 노닌다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이 말이 터무니없지만 미묘한 도(道)를 실행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으니 장오자가 ‘이 말은 황제가 들었다고 해도 당황했을 텐데, 네가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자네는 지나치게 급히 서두르는 듯하다. 달걀을 보고 닭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리기를 바라거나 탄알을 보고 새구이를 먹기 바라는 것과 같다.[見卵而求時夜 見彈以求鴞炙]’라고 말하는 대문이 나온다.

구잠[屨簪]  신발과 비녀. 미천한 옛 신하. 공자(孔子)가 길을 가다 어떤 부인이 우는 것을 보고 사연을 물었더니, 그 부인은 땔감으로 쓸 시초(柴草)를 베다가 시초로 만든 비녀[簪]를 잃었기 때문이라 했다. 다시 그게 왜 그리 슬프냐고 물었더니, 그 부인은 “비녀를 잃은 것이 슬픈 게 아니라 옛 물건을 잃은 게 슬픕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나오고, 또 초(楚)나라 소왕(昭王)이 전쟁을 하다가 후퇴할 때 신발[屨] 한 짝이 잃었는데, 30보쯤 갔다가 다시 돌아와 그 신발을 찾아 신으니, 신하들이 신발 한 짝을 왜 그리 아까워하냐고 물었다. 이에 소왕은 “초나라가 비록 가난하지만 신발 한 짝이 아까우랴. 군사들과 함께 후퇴하려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는 고사가 신서(新書) 유성(諭誠)에 나온다. 땔감으로나 쓰는 재료로 만든 비녀와 후퇴하는 군사 한 사람도 소중하게 여겼던 이 두 고사를 ‘유잠추구(遺簪墜屨)’라 하며, 옛 물건이나 옛 사람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구장[龜腸]  거북 창자란 고인(古人)들이 흔히 거북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직 기(氣)만 마시고 산다고 여긴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굶주린 창자에 비유한다. 당(唐)나라 육구몽(陸龜蒙)의 시 일구(逸句)에 “격류와 침석만 말하였을 뿐, 선복과 구장은 말하지 않았네.[但說激流幷枕石 不辭蟬腹與龜腸]”라는 구절이 있다. 선복구장(蟬腹龜腸). 선복귀장(蟬腹龜腸).

구장[枸醬]  구장(枸醬)은 촉(蜀) 지방에서 생산되는 구목(枸木)의 열매를 담가서 만든 조미료(調味料)인 초장을 가리키는데, 촉인(蜀人)들이 이것을 매우 진미(珍味)로 여겼다고 한다. 한 무제 때 번양 영(番陽令) 당몽(唐蒙)이 일찍이 무제의 명으로 남월왕(南粤王)을 설득하러 갔을 때 그곳에서 당몽에게 구장을 대접하므로, 그것의 소종래(所從來)를 물어본 결과, 장가강(牂柯江) 근처 번우성(番禺城) 아래서 난다는 말을 듣고, 장안(長安)에 돌아와서 장사치에게 물어보니, 구장이 촉에서 나는데 이것을 야랑국(夜郞國)에 내다 판다고 하므로, 당몽이 장차 남월을 제압하기 위하여 먼저 야랑국과 개통(開通)할 계책을 가지고 무제에게 상서(上書)하여 마침내 그 일을 성사시킨 고사가 있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