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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의절[丘濬儀節]~구준지려[寇準之慮]~구준청단연[寇準請澶淵]


구준의절[丘濬儀節]  구준은 명(明)나라 사람으로, 관직이 문연각 태학사(文淵閣太學士)에 이르렀으며 특히 주자학에 정통하였다. <의절>은 <가례의절(家禮儀節)>의 준말로, 주희(朱憙)의 가례(家禮)를 해설한 책이다.

구준전연책[寇準澶淵策]  송진종(宋眞宗) 초기(1014)에 요(遼)의 군사가 대거 침입하매 천하가 몹시 놀랐으되, 구준이 분분한 중의를 힘써 배척하고 진종의 친정(親征)을 청한 계책을 이른다. 그래서 진종이 전연(澶淵)에 거둥하였더니, 요가 두려워하여 글을 바치고 화친하기를 애걸하므로 화친을 맺고 돌아왔다. <宋史 卷281 寇準傳>

구준지려[寇準之慮]  구준(寇準)은 북송(北宋) 때 사람이다. 태종(太宗) 때 장마가 계속되어 백성들이 곳곳에서 홍수에 시달리자 태종이 탄식하기를 “내가 평소 형벌이나 재판에는 무척 마음을 써 왔는데 어찌하여 하늘이 이런 가혹한 견책을 내린단 말인가.”라고 하자, 구준이 나서서 아뢰기를 “얼마 전에 주(州) 관리가 공금을 약간 유용하였는데 법으로 비추어 볼 때 사소한 일인데도 폐하께서는 그를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또 왕회(王淮)는 참정(參政) 왕면(王沔)의 아우로서 공금 수백만 금을 횡령했는데 폐하께서는 참정의 아우라는 이유로 그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이러한데도 폐하께서는 형벌의 시행을 공정하게 하셨다고 하십니다. 하늘이 가혹한 견책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태종은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왕회를 목 베고 왕면을 파면시켰다. 그랬더니 과연 비가 그쳤다. <史略 卷6 宋太宗>

구준지응선매골[求駿祗應先買骨]  좋은 말을 사려면 죽은 말의 뼈라도 사야 한다는 것으로 간절히 현자(賢者)를 구하는데 쓰는 말이다. 옛날 연 소왕(燕昭王)은 제(齊)에게 패망한 뒤에 왕위에 올라 어진 사람을 구하여 제 나라에 보복하려 하였다. 이에 곽외(郭隗)에게 훌륭한 사람을 천거하여 줄 것을 청하였더니 곽외는 “옛날 어떤 왕이 천금(千金)을 가지고 천리마(千里馬)를 사려고 하였으나 구하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연인(涓人; 환관)을 시켜 천리마를 구하긴 했으나 말은 이미 죽은 뒤였습니다. 연인은 죽은 말의 뼈를 오백금(五百金)을 주고 사왔더니 이 소문을 듣고 1년이 못되어 천리마가 3마리나 이르렀다 합니다. 만일 왕께서 진정 어진 사람을 구하신다면 저부터 먼저 쓰십시오. 이렇게 하시면 저보다 훌륭한 사람이 곧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戰國策 燕策>

구준진북문[寇準鎭北門]  송나라 진종(眞宗) 때 거란(契丹)이 침입해 오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황제에게 남쪽으로 피해 가 있을 것을 청하였으나 구준만은 친정(親征)하기를 청하였다. 이에 진종이 친정을 결정하였으나 남성(南城)에 이르러서는 군사를 주둔한 채 강을 건너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구준이 다시 강을 건너기를 고집하여 황제가 할 수 없이 강을 건넜는데, 이로 인해 사기가 고무되어 거란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거란을 물리친 뒤 거란에서 화친을 요청하자, 구준은 이에 반대하였으나 황제가 구준의 말을 듣지 않고 화친하였다. <宋史 卷281 寇準傳>

구준청단연[寇準請澶淵]  구준은 송 진종(宋眞宗) 때의 명상으로, 강직하기로 명망이 높았는데, 일찍이 거란(契丹) 군대가 대거 침입했을 때, 강력히 반대하는 중의(衆議)를 물리치고 진종으로 하여금 단연(澶淵)으로 친정(親征)할 것을 강청하여 마침내 그의 말대로 따른 결과, 거란의 군대를 일격에 물리쳐서 큰 공훈을 세운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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