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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사[句踐詐]~구천생취훈련[句踐生聚訓鍊]~구천세[九千歲]


구천범려[句踐范蠡]  춘추 시대(春秋時代)에 월왕 구천(越王句踐)이 아비 윤상(允常) 때부터 오왕 합려(吳王闔閭)와 서로 원수가 되어 공격을 하다가 후에 오왕 부차(吳王夫差)에게 패전을 당하였는데, 문종(文種)・범여(范蠡)로 정승을 삼고 수십 년동안 고난을 참으며 복수에 힘써서 마침내 오(吳)를 멸했다. <사기(史記)>

구천사[句踐詐]  구천(句踐)의 사술(詐術). 구천은 춘추 시대 월(越) 나라 임금으로 오(吳) 나라를 칠 적에 어떤 사람이 순주(醇酒 진하고 맛있는 술) 한 동이를 바치자, 먹지 않고 강의 상류에다 쏟아 하류에 있는 사졸들에게 마시게 하매 사기(士氣)가 왕성해졌다 한다. <蒙求> <列女傳 母儀> 구천투료(句踐投醪).

구천사오[句踐事吳]  구천(句踐)이 오(吳)나라를 섬김.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숙적인 오왕(吳王) 부차(夫差)와 부초(夫椒)에서 싸워 크게 패하고 회계산(會稽山)에서 농성하다가 오(吳)나라에 항복하여 나라를 바치고 신첩(臣妾)이 될 것을 간청하면서 오(吳)나라의 태재(太宰) 백비(伯嚭)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치니, 백비(伯嚭)가 부차(夫差)를 설득하여 결국 월(越)나라는 멸망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구천(句踐)은 복수를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여 10년 동안 범려(范蠡)・문종(文種)과 함께 백성을 기르고 재정을 모아 부국강병을 이룩하고, 마침내 오(吳)나라를 대파하여 부차(夫差)를 자살하게 함으로써 복수에 성공하였다. <史記 권41 越王句踐世家>

구천생취훈련[句踐生聚訓鍊]  구천(句踐)이 백성을 모아 훈련함. 생취(生聚)는 생산(生産)하여 자재(資材)를 모아 저축(貯蓄)함. 백성(百姓)을 길러 군사(軍士)를 강화하고 나라를 부(富)하게 함. 백성을 길러 나라를 부강하게 함. 즉, 인구를 증가시키고 재정을 넉넉하게 쌓아가는 것을 이른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회계(會稽)에서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후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국력을 양성하여 고소산(姑蘇山)에서 오를 크게 이기자, 부차는 이 싸움에서 자살하였다.

구천서회계[句踐棲會稽]  구천이 회계산에서 농성함. 월(越)나라 왕 구천(句踐)은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패해 회계산(會稽山)에서 치욕적인 화친을 맺었다. 그 후 구천은 이날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낮에는 쓸개를 핥고 밤에는 섶 위에서 잤다고 한다. <史記 卷41 越王句踐世家>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부차가 월나라를 부초에서 패퇴시키니 월왕 구천이 남은 군사로 회계산에 머무르며 자신은 신하가 되고 아내는 부차의 첩이 되기를 청하니 오자서가 안 된다고 말했지만 태재 백비가 월나라 뇌물을 받아먹고 부차에게 월나라를 용서하라고 설득하였다. 구천이 나라에 돌아와서 쓸개를 자리에 걸어놓고 누우면 곧 우러러 쓸개를 맛보다가 말하기를 ‘네가 회계산의 치욕을 잊었느냐?’라고 하고 나라의 정사를 모두 대부 종과 범여에게 맡겨 함께 군사 일을 다스리게 하여 오나라를 도모하고자 하였다.[夫差敗越于夫椒 越王句踐以餘兵 棲會稽山 請爲臣妻爲妾 子胥言不可 太宰伯嚭受越賂 說夫差赦越 句踐反國 懸膽於坐 臥卽仰膽嘗之曰 女忘會稽之恥耶 擧國政 屬大夫種而與范蠡 共治兵事 謀吳]”는 내용이 있다.

구천세[九千歲]  구천세에 이르도록 영화를 누리라는 뜻이다. 황제 다음가는 권력자에게, 천자에게 쓰는 ‘만세’ 대신 ‘구천세’라고 부른 것에서 비롯되었다. 국가권력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권신(權臣)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나 아부의 뜻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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