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광장육신[金光丈六身]~금광초[金光草]~금구[金龜]~금구[金甌]

금광문[金光門]  장안 외성의 서쪽에 개원(開遠)・금광(金光)・연평(延平) 등 세 개의 문이 있었는데, 이 중 가운데 문이 금광문이다.

금광장육신[金光丈六身]  석가(釋迦) 당시 인도인(印度人)의 신장은 보통 8척이었는데, 불교도들이 교조를 존숭한 나머지 불상을 조성할 때 두 배로 더 크게 만들었다고 한다. <後漢書 西域 天竺傳・佛說十二遊經>

금광초[金光草]  먹으면 신선이 되어 죽지 않고, 장수를 누린다는 전설상의 신선초(神仙草)이다. 명경초(明莖草)의 일종이다. 신선 영봉(寧封)이 항상 먹었다 한다. 사원경(謝元卿)이란 사람이 동악부인(東岳夫人)이 사는 곳에 가서 이 풀들을 보았는데, 잎은 파초와 같고 꽃이 광채가 난다고 한다. <御製佩文韻府 卷49 上聲 十九晧韻五>

금교역[金郊驛]  황해도의 개성・금천・평산・서흥・봉산・황주로 이어지는 역도(驛道)인 금교도(金郊道)의 중심역이다.

금구[錦鳩]  산비둘기.

금구[金龜]  허리에 차는 금으로 만든 장식품이다. 사물기원(事物紀元)에 따르면 삼대(三代) 이전에는 관리들이 가죽으로 만든 산대(算袋)라는 것을 찼는데 위(魏)나라 때에 거북 모양으로 고쳤다. 당 고조(唐 高祖)가 몸에 차는 물고기를 주었는데, 삼품(三品) 이상은 금으로 장식했고 오품(五品) 이상은 은으로 장식하였으므로 어대(魚袋)라고 이름하였다. 측천무후(則天武后) 때에 거북 모양으로 바꾸었다가 얼마 후 물고기 모양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금귀(金龜).

금구[金龜]  당나라 때 관원들이 차는 물고기 모양의 부신(符信)을 가리키는데, 관등(官等)에 따라 금(金)・은(銀)・동(銅)으로 만들어 어대(魚袋)에 넣어 몸에 차고 다녔다. 무후(武后) 천수(天授) 원년(元年: 690년)에 물고기 모양의 장식을 거북 모양으로 바꾸었다가 중종(中宗) 초(初)에 다시 원래대로 바꾸었다. 당(唐) 나라의 문장가 하지장(賀之章)이 이 금구로 술을 바꾸어 이태백과 함께 술을 마셨다 한다.

금구[金甌]  금으로 만든 사발로 흠이 없고 견고하여 강토(疆土)에 비유된다. 양 무제(梁武帝)가 일찍 일어나 무덕각(武德閣)에 이르러 혼잣말로 “나의 국토는 오히려 금구와 같아 하나의 상처나 흠도 없다.[我國家猶若金甌, 無一傷缺.]”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南史 卷62 朱异列傳>

금구[金甌]  황금으로 만든 사발로 흠이 없고 견고하다 하여 강토(疆土)에 비유된다. 양서(梁書) 권56 후경열전(侯景列傳)에 “양 무제(梁武帝)가 일찍이 밤에 나가 일을 보려고 무덕합(武德閤)에 이르러 혼자 말하기를 ‘우리 국가가 금구처럼 완고하여 하나도 결손이 없는데[我家國猶若金甌 無一傷缺], 지금 바치는 땅을 받는다면 어찌 사리에 맞겠는가. 만약 분란을 초래할 경우 후회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금구[金甌]  금구는 금사발이다. 당 현종(唐玄宗)은 재상을 임명할 때마다 반드시 먼저 어필(御筆)로 그 성명을 써서 책상 위에 올려놓는데, 하루는 최림(崔琳) 등의 이름을 손수 써서 금사발로 덮어 놓았다. 이윽고 태자가 들어가자, 현종이 태자에게 이르기를 “이것이 재상의 이름이다. 네 생각에는 누구일 것 같으냐? 알아맞히면 술을 내리겠노라.”고 하므로, 태자가 말하기를 “최림, 노종원(盧從愿)이 아닌가 생각됩니다.”라고 하니, 현종이 그렇다고 말하고 태자에게 술을 내렸다. 전하여 재상 임명을 뜻한다. 상부(上府)는 곧 재상부(宰相府)를 뜻한다. <新唐書 卷109 崔琳列傳>

금구[金甌]  금으로 만든 사발 또는 잔을 이른다. 당 현종(唐玄宗)이 재상을 선임할 때마다 먼저 후보자의 성명을 쓴 종이를 금구로 덮어 놓고 중론(衆論)을 물어 임명하였는데, 한번은 마침 태자가 들어오므로 현종이 금구를 가리키며 “이 속에 재상의 이름이 들어 있다. 네 생각에는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묻자, 태자가 “최림(崔琳)이 아니면 노종원(盧從愿)인가 합니다.” 하고 아뢰었는데, 과연 적중하였다. 이후로 금구는 재상을 임명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新唐書 卷109 崔義玄列傳>

금구[金甌]  금구복명(金甌覆名). 금구는 황금으로 만든 그릇으로, 명망이 중하여 재상의 후보자에 들어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당(唐)나라 현종(玄宗)이 재상을 임명할 때마다 먼저 어필로 대상자의 이름을 써서 금 그릇으로 덮어 놓고 세자에게 맞추어 보게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新唐書 卷109 崔琳列傳> 당(唐)나라 이덕유(李德裕)가 저술한 명황십칠사(明皇十七事)에 “주상이 정승을 임명할 때 먼저 팔분체(八分體)로 정승의 성명을 쓴 뒤에 금구로 덮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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