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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지약[藍田之約]~남전출옥[藍田出玉]~남전현승[藍田縣丞]

남전일난옥생연[藍田日暖玉生煙]  남전(藍田)은 남전산(藍田山)인데, 유명한 옥 생산지이므로 옥산(玉山)으로도 불린다.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에 있다. 사공도(司空圖)의 여극포서(與極浦書)에 “대용주(戴容州: 숙륜叔倫)가 ‘시가의 정경은 남전에 햇빛이 따뜻해지자 미옥(美玉)에 안개가 일어나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지만 눈앞에서는 볼 수 없는 것과 같다.[戴容州(叔倫)云 詩家之景 如藍田日暖 良玉生煙 可望而不可置于眉睫之前也]’라고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남전지약[藍田之約]  남전은 오늘날 중국 섬서성(陝西省)의 고을 이름이다. 송나라 때 남전에 살던 여대충(呂大忠)・대방(大防)・대균(大鈞)・대림(大臨) 등 형제 네 사람이 그 고을 사람들과 서로 지키기로 약속한 자치 규범이다. 주로 “덕과 업으로 서로 권하고[德業相勸] 허물과 그른 일을 서로 경계하고[過失相規] 예다운 풍속으로 서로 사귀고[禮俗相交] 근심과 어려운 때 서로 구한다[患難相恤].”는 등 네 조목인데, 후세 향약의 기준이 되었다. <小學 卷六 善行 第六>

남전최씨장[藍田崔氏莊]  두보(杜甫)가 중구일에 지은 남전최씨장(藍田崔氏莊) 시에 “늙어 갈수록 가을의 슬픔을 애써 자위하던 터에, 흥겨워라 오늘은 그대의 환대를 십분 받았네. 짧은 머리털에 모자 날려감은 부끄러운데, 옆 사람 시켜 관 바르게 씀은 우습기도 하여라. 남수는 멀리 일천 계곡으로부터 내려오고, 옥산은 높다랗게 두 봉우리가 차갑구나. 명년의 이 모임 때까지 과연 누가 건강할는지, 취하여 수유를 손에 쥐고 자세히 보노라.[老去悲秋强自寬 興來今日盡君歡 羞將短髮還吹帽 笑倩傍人爲正冠 藍水遠從千澗落 玉山高竝兩峯寒 明年此會知誰健 醉把茱萸仔細看]”라고 하였다.

남전출옥[藍田出玉]  남전(藍田)은 중국 섬서성(陝西省) 남전현(藍田縣)의 동남에 있는 산이며 옛부터 아름다운 옥의 산출지로 유명하였다. 남전이 옛부터 명옥을 산출하듯이 현명한 부모에서는 현명한 자식이 태어난다는 말이다.

남전향약[藍田鄕約]  남전에 살던 여씨(呂氏) 4형제 즉 대충(大忠)・대방(大防)・대균(大勻)・대림(大臨)이 같은 고을 사람들과 지키기로 한 네 가지 규약이다. 즉 덕업을 서로 권면하며[德業相勸], 과실을 서로 바로잡아 주며[過失相規], 예의의 풍속으로 서로 사귀며[禮俗相交], 환란에 서로 구휼한다.[患難相恤]는 것을 말한다. 4형제는 장재(張載)와 정자(程子)에게 배웠다고 한다. <小學 卷6 善行>

남전현승[藍田縣丞]  한유(韓愈)의 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丞廳壁記)에 최사립(崔斯立)이 남전 현승으로 좌천되어 가서 현승을 낮은 관직이라 여기지 않고 잘해 보려다가 좌절되자 “승이여 승이여, 나는 승을 저버리지 않았건만 승이 나를 저버리는구나.[丞哉丞哉 余不負丞而丞負余]”라고 탄식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현승이라는 직책은 부현령(副縣令) 격이어서 사안의 가부를 결정하는 결재권이 없어 내용도 모른 채 아전이 짚어 주는 대로 그 자리에 조심스레 서명이나 하는 자리임을 말한 것이다. <古文眞寶 後集>

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丞廳壁記]  당나라 때 한유(韓愈)가 지은 글로, 아전들에게 휘둘리는 말단 관리의 애환과 그를 극복하고 청사의 면모를 일소한 최사립(崔斯立)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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