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귀문관[鬼門關]~귀문금신[鬼門金神]~귀문조적[龜文鳥跡]


귀문[龜文]  거북 모양으로 손잡이를 만든 관인(官印)이다. 한관의(漢官儀)에 “승상(丞相)은 황금으로 만든 거북 손잡이 도장에 장(章)이란 글자를 새긴다.”라 하였다.

귀문[龜文]  거북 등의 문양처럼 생긴 금이다. 후한서(後漢書) 권63 이고열전(李固列傳)에 “이고의 발바닥에 귀문이 있었는데, 뒤에 태위(太尉)가 되었다.”라고 하였다. 그 주에 “발바닥에 귀문이 있는 사람은 2000석의 녹봉을 받는다고 상서(相書)에 나와 있다.”라고 하였다.

귀문[鬼門]  귀문관(鬼門關). 중국의 옛 관문 이름으로, 광서성(廣西省)의 북류(北流)와 옥림(玉林) 사이에 위치하는 변방 요새이다. 산세가 험준한 데다 장독(瘴毒)이 만연하는 등 풍토가 험악하여 생환하는 자가 드물었으므로 “귀문관은 열에 아홉은 돌아오지 못한다.[鬼門關 十人九不還]”라는 속요(俗謠)까지 유행하였다고 한다. <舊唐書 卷41 地理志4>

귀문[鬼門]  본디 관명(關名)인 귀문관(鬼門關)을 가리키는데, 오늘날 광서(廣西)의 북류(北流)와 옥림(玉林) 사이에 있는데, 지형이 매우 험준하다고 한다. 구당서(舊唐書) 권41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귀문관 남쪽으로는 장려가 더욱 심해서 그곳에 간 사람은 살아 돌아온 이가 드물다. 속담에 ‘귀문관을 나간 사람은 열에 아홉은 돌아오지 못한다.’고 한다.[其南尤多瘴癘, 去者罕得生還. 諺曰:鬼門關, 十人九不還.]”라고 하였다.

귀문[鬼門]  산해경(山海經) 대황북경(大荒北經)에 이르기를 “창해(滄海) 가운데에 도삭산(度朔山)이 있고, 그 위에 큰 복숭아나무가 있는데 가지는 삼천 리를 뻗어 있다. 그 가지 사이의 동북쪽을 귀문이라고 하는데, 온갖 귀신이 출입하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귀문[鬼門]  점장이들이 말하는 28수(宿)중에 귀성(鬼星)이 있는 방위를 귀문이라 한다. 귀신이 드나드는 곳이라 하여 매사에 꺼리는 방위이다.

귀문관[鬼門關]  귀문관은 옛 관명(關名)인데, 구당서(舊唐書) 권41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귀문관 남쪽으로는 장려가 더욱 심해서 그곳에 간 사람은 살아 돌아온 이가 드물다. 속담에 ‘귀문관을 나간 사람은 열에 아홉은 돌아오지 못한다.’고 한다.[其南尤多瘴癘, 去者罕得生還. 諺曰:鬼門關, 十人九不還.]”라고 하였다.

귀문관[鬼門關]  귀문관은 중국 광서(廣西) 북류현(北流縣) 서쪽에 있는 관문으로 옛날 중원에서 흠주(欽州)・염주(廉州)・뇌주(雷州)・경주(瓊州)와 교지(交趾)로 통행하는 길목이었다 한다. 산세가 험준한 데다 장려(瘴癘)가 만연하는 등 풍토가 험악하여 생환(生還)하는 자가 드물었으므로 “열에 아홉은 못 돌아오는 귀문관[鬼門關 十人九不還]”이라는 속요(俗謠)까지 유행했다 한다. <舊唐書 地理志 4> 시문에서는 흔히 풍토가 나쁘고 지형이 험악한 먼 변경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귀문관[鬼門關]  귀신이 출입하는 관문이라는 뜻으로, 저승으로 통하는 길이라는 말이다.

귀문관[鬼門關]  명천(明川)과 경성(鏡城) 사이로,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 제50권 함경도(咸鏡道) 명천현(明川縣) 진보조에 보인다.

귀문금신[鬼門金神]  귀문에 있는 금신으로 사람에게 재화를 내린다고 한다.

귀문조적[龜文鳥跡]  거북의 등딱지의 무늬와 새발의 자취, 모두 문자의 기원이다.

귀물도화[鬼物圖畫]  사당 안의 벽에 그려진 신귀(神鬼)의 그림을 지칭한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