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배괄모[龜背刮毛] 거북 등의 있지도 않은 털을 긁는다 함이니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곳에 가서 구한다는 뜻이다.
귀배상괄모[龜背上刮毛] 거북이 등의 털을 긁는다.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것을 애써 찾으려 하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이다.
귀백[鬼伯] 귀신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염라대왕(閻羅大王)을 가리킨다. 악부시집(樂府詩集) 권27 호리(蒿里)에 “염라대왕은 어찌 이리도 재촉하는가, 사람의 목숨 조금도 머뭇거리지 못하게 하네.[鬼伯一何相催促 人命不得少踟躕]”라고 보인다.
귀범마도[龜範馬圖] 귀범은 낙서(洛書)를 말한 것으로, 하우씨(夏禹氏)의 9년 치수(治水)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신귀(神龜)의 등에 있었다는 글로서 이것이 천하를 다스리는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기원이 되었고, 마도는 하도(河圖)를 말한 것으로, 복희씨(伏羲氏) 때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그림인데 이것이 복희씨에 의해 주역(周易)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었다.
귀법사[歸法寺] 경기도 개풍군(開豐郡) 영남면(嶺南面) 용흥리(龍興里) 탄현문(炭峴門) 밖에 있었던 사찰이다. 고려 제4대 임금 광종(光宗) 14년(963)에 국찰(國刹)로서 이 절을 짓고 균여(均如)를 초대 주지로 삼았다. 제11대 임금 문종(文宗) 때 최충(崔冲, 984~1068)이 이곳에서 예비 등용문인 하과(夏科)를 베풀었으며 여러 왕들이 자주 행차하고 중요한 법회를 베풀던 고려 최대의 국찰이었다.
귀보[龜寶] 거북이를 말한다. 천중기(天中記) 권57에 “귀보는 원귀(元龜), 공귀(公龜), 후귀(侯龜), 자귀(子龜) 등 네 종류가 있다.”라고 하면서 각각의 크기를 설명하였다. 또 설부(說郛) 권33 상(上)에 “서태위(徐太尉) 언약(彦若)이 광남(廣南)으로 갈 때 작은 바다를 건너게 되었는데, 물이 낮은 곳에서 유리병 하나를 얻었다. 그 속에 어린아이 주먹 크기의 작은 거북이 있었는데, 길이는 1치(寸) 쯤이고, 병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였다. 병의 목이 아주 작았으므로 어떻게 그 속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었다. 저녁때가 되자 배가 한 쪽으로 기우는 것을 알고 살펴보니, 많은 거북들이 배로 올라오고 있었다. 언약이 두려워하여 유리병을 바다에 던지자 거북들이 흩어졌다. 조금 뒤에 언약이 뱃사람에게 말하자, 뱃사람이 ‘그것이 이른바 귀보이니, 세상에 드문 영물입니다. 그런 영물을 만나고도 갖지 못했으니 안타깝습니다.[此所謂龜寶也, 希世之靈物, 惜其遇而不能有.]’라고 했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귀복[歸福] 제사 지내고 돌리는 제사 고기와 술 등을 이른다. 歸(귀)는 饋(궤)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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