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귀융[歸融]~귀은불수초[歸隱不須招]~귀의지소[皈依之所]


귀융[歸融]  당(唐)나라 사람으로 자는 장지(章之)이다. 벼슬은 양주목(梁州牧)・한림학사(翰林學士)・병부 상서(兵部尙書) 등을 역임하였다. <唐書 卷164> 귀융이 양주 목사(梁州牧使)가 되어 새로 역로(驛路)를 수축하니, 유우석(劉禹錫이 기(記)를 지어 찬양하였다.

귀은불수초[歸隱不須招]  금(金)나라 이헌보(李獻甫)의 시에 “인간 세계 어느 곳에 이런 경치가 있을까, 부르지 않아도 응당 돌아가 숨으리라.[何處人間景如此 便應歸隱不須招]”라는 말이 나온다. 이 시구는 제황화유거도(題黃華幽居圖)라는 칠언율시의 미련(尾聯) 즉 제7, 8구에 나오는데, 금나라 원호문(元好問)이 편집한 중주집(中州集) 권10에 수록되어 있다. 참고로 송지문(宋之問)의 원운(原韻)에도 “옛 동산이 언제나 눈에 선한지라, 부르지 않아도 혼이 먼저 달려가네.[故園長在目 魂去不須招]”라는 말이 나온다.

귀읍백비지참[鬼泣伯嚭之譖]  간신이 득세하여 충신을 죽이니 신명도 운다는 뜻이다. 구천(句踐)은 춘추 시대 월왕(越王)으로 오(吳)와 깊은 적대 관계였는데 오왕 부차(吳王夫差)에게 패하여 회계산(會稽山)에서 항복하였다. 이때 오의 충신 오자서(伍子胥)는 항복을 받고 화해하자는 제의에 반대하면서 월을 멸망시킬 것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월의 뇌물을 받은 태재(太宰) 백비(伯嚭)는 화의(和議)를 주장하여 결국 구천을 놓아주었다. 이후 자서는 백비의 참소를 입어 죽었는데 몇 년이 되지 않아 와신상담(臥薪嘗膽), 복수할 것을 꾀하던 구천에게 오는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史記 卷31 吳太伯世家, 卷41 越王句踐世家>

귀의[皈依]  불교의 입교의식을 가리킨다. ‘皈(귀)’는 ‘歸(귀)’와 같다.

귀의[歸依]  나의 신명(身命)을 던져서 훌륭한 분에게 돌아가 의지한다는 뜻이다. 나무(南無)・귀명(歸命)・귀경(歸敬)과 동일하게 쓰는 불교의 술어이다.

귀의지소[皈依之所]  귀의(歸依)해야 할 장소. 불경을 읽고 도를 닦는 도량(道場)을 말한다.

Leave a Reply

Copyright (c) 2015 by 하늘구경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