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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보순식[跬步瞬息]~규복[圭復]~규부자용[窺夫子墉]~규분[揆分]


규보[蹞步]  규(蹞)는 반걸음으로 주척(周尺) 3자이고, 보(步)는 한 걸음으로 6자이다. 주척(周尺)은 한 자의 길이가 20cm이므로 한 걸음은 120cm이다.

규보[跬步]  跬(규)는 한 발 내딛는 거리로, 반보(半步)를 이르는 말이다. 蹞(규)로도 쓴다.

규보순식[跬步瞬息]  반 발자국 순식간. 모초재실기(慕初齋實紀) 권1 무은(無隱)에서 ‘한순간도 간사하게 꾸미는 태도[一息私僞之態]’가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규보이불휴[跬步而不休]  부단한 노력을 강조한 말이다. 순자(荀子) 수신편(修身篇)의 “반 발짝씩 쉬지 않고 나아가면 절름발이도 천 리를 갈 수 있다.[跬步而不休 跛鼈千里]”라는 말을 원용한 표현이다.

규복[圭復]  백규(白圭)의 시를 반복해 외웠다는 말로, 말을 신중히 함을 이른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남용이 백규란 내용의 시를 여러 번 반복해 외우자 공자가 형의 딸을 그에게 시집보냈다.[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는 내용이 보이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시’는 시경(詩經) 대아(大雅) 억(抑)의 “백규의 홈은 그래도 갈아낼 수 있지만 말의 흠은 어찌할 수 없다.[白圭之玷 尚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為也]”라는 구절을 이른다.

규복[圭復]  반복하여 외움으로써 명심한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억(抑)의 “흰 구슬의 티는 갈아 없앨 수 있거니와, 말의 허물은 어찌할 수가 없다.[白圭之玷 尙可磨也 斯言之玷 不可爲也]”라고 한 것을 남용(南容)이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었던 데서 온 말로, 상대방의 시문을 정성스럽게 읽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선진(先進)에 “남용이 백규의 글을 세 번씩 되풀이하여 읽거늘, 공자가 형의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아 주었다.[南容三復白圭 孔子以其兄之子妻之]”라고 하였다.

규봉비[圭峯碑]  규봉정혜선사비(圭峯定慧禪師碑)를 이름인데, 섬서(陝西) 호현(鄠縣)에 있다. 정서(正書)로 36항이요, 각 항이 65자이며, 액(額)에는 전서(篆書)가 있다.

규봉선사[圭峯禪師]  규봉선사는 당(唐) 나라 때의 고승(高僧)으로 비는 섬서성(陝西省) 호현(鄠縣)에 있는데, 배휴(裵休)가 비문을 찬하고 글씨를 썼으며, 유공권(柳公權)이 전액(篆額)을 썼다. <寰宇訪碑錄 唐>

규부자용[窺夫子墉]  공자의 담장을 엿봄.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자복경백(子服景伯)이 숙손무숙(叔孫武叔)의 말을 빌려 자공(子貢)이 공자보다 낫다는 말을 전하자 자공이 “집에다 비유하자면 나의 담장은 어깨 높이라 나의 살림을 엿볼 수 있지만, 부자의 담장은 몇 길이라 문을 통해 들어가 보지 못하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성대함을 알 수가 없소. 그런데 그 문으로 들어가 본 이도 사실 드무니 숙손무숙의 말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 百官之富. 得其門者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라고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규분[揆分]  분수를 헤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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